[신간] 외로운 청소년과 상처받은 어른들의 이야기…김나영 장편소설 ‘B01호에는 귀신이 산다’
“B01호에는 귀신이 산다.”라는 제목 자체에 이미 피로와 고독, 일상에 드리운 기묘한 그림자가 감돌았다. 김나영 작가가 내놓은 이 신작 장편소설은 단순한 성장소설도, 손쉬운 호러도 아니다. 오히려 허구의 귀신으로 대표되는 상처와 결핍,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인간 심리의 은유적 풍경이자, 세상에 내던져진 ‘어른이 되었으나 어른일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진지한 송가라 할 수 있다.
‘B01호’라는 공간은 단순히 낡은 방이 아니다. 지하라는 물리적 특성에, 사회의 바닥을 은근하게 상징화한다. 고시원, 원룸, 지하철 등 한국 소설들이 자주 목격한 어둠과 밀폐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두 인물, 한 명은 18살 생일을 겨우 넘긴 청소년 수진이고, 다른 한 명은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늘 선택을 회피하는 30대 후반 직장인 미정이다. 수진은 방황하고, 미정은 회피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과 ‘집’이라는 울타리로부터 멀어져 있다.
무서움이 아닌 애도의 색채로 펼쳐지는 귀신: 작가는 귀신이라는 장치를 통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시각화한다. 공포영화에서 괴담 소재로 소비되기 쉬운 귀신이, 여기선 항상 곁에 머무는 상흔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그 귀신은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거나, 명확한 해소 없이 잔여감만을 남긴다. 김나영은 이를 통해, 어른이 상처와 후회를 끌어안은 채 어떻게든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익숙함과 생경함이 공존하는 묘사에서, 소설은 한국 현대 가족소설의 전통과 2020년대의 새로운 불안과 방황을 견고히 이어붙인다.
또한, 김나영 작가는 인물 간 어색함과 말끝의 망설임을 디테일하게 잡아낸다. 각 장에서는 세대를 가르는 대화의 단절, 감정의 곁돌기, ‘말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 본연의 집요한 탐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하 단칸방 ‘B01호’의 좁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요즘 ‘청소년 성장담’과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감정의 극단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하게 무너지고, 아주 더디게 박동하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직면한다.
기억과 상실, 치유의 반복 구조: 소설의 핵심은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귀신을 부른 ‘상처’에 있다. 사건의 흐름보다는 감정의 흐름이 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작품이 내세우는 감각적 미학이자 숨겨진 힘이다. 수진이 ‘엄마’를, 미정이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는 장면들은 한 편의 회화처럼 그려진다.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화해와 용서의 순간들, ‘누가 누구의 손을 먼저 잡을 수 있을까’라는 끊임없는 시선의 상호작용에서, 작가는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 놓여 있는 인물들의 나약함과 애잔함을 잡아낸다.
동시대 청소년 문학, 그리고 어른의 소설: 최근 수년간 한국 문학계에서는 소외된 청소년, 그리고 ‘으른’이 되어도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의 고통을 다룬 작품이 늘고 있다. ‘B01호에는 귀신이 산다’는 그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각 인물의 내면을 폭발적인 드라마가 아닌 잔잔한 파문처럼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는 오히려 시대의 속도를 거스르는 부담감과 현실성의 양면을 드러낸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수진이나 미정, 혹은 그 주변 인물들에서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일상에 ‘정면승부’ 하지 못하는 세대의 속마음을, 당신이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내면을 귀신이라는 상징 아래 포착한다.
감독과 배우의 스타일에 비유한다면, 김나영은 최소주의적 미장센의 거장 히로카즈 코레에다를 떠올리게 한다. 직접적 사건이나 무거운 메시지 대신, 사소한 디테일과 무심한 교환 속에서 인물과 상황을 빚어낸다. 현란한 연기가 아니라, 숨 죽이는 듯한 침묵, 웅크리듯 앉아있는 자세,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숨어 우는 장면 등에서 미세한 감정의 이불을 들추어낸다. 최근 넷플릭스, 왓챠 등 OTT 드라마들도 이런 잔잔한 파동의 작품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극의 시대에 조용히 말 거는 서사’를 추구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사회적 함의와 출판계의 신호탄: 모든 이들이 “환희와 성취의 청춘”을 외치는 시대, 실제 청춘은 골목귀신처럼 쓸쓸하고, 어른은 죄책감과 기억의 주검에 눌려 있다. 팬데믹 이후 심해진 고립감, 관계의 단절, 타인과의 단절 속에서 이 소설은 ‘동시대 공포’를 재료로 사용하지만, 믿음과 애도의 대화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그래, 우리 모두에게는 숨은 B01호가 필요했을지도’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민다.
수많은 문학작품이 시도하는 성장·구원·관계의 테마 속에서, 김나영은 자신만의 색채를 분명하게 내세우고 있다. 단숨에 넘기는 책이 아니며, 일상에 ‘귀신처럼 배인 슬픔’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대적 환상 너머로 실재의 인간을 마주 보게 하는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의 내면을 들키지 않고 지그시 어루만져준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