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서 출간] ‘한 조각씩 걷는 파리’·‘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 외: 변화하는 시대의 단면을 걷다
신간 도서 소식이 전하는 풍경은 언제나 그 시대의 조용한 진동이다. 이번에 출간된 ‘한 조각씩 걷는 파리’와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는 문화·사회적 맥락에서 서로 상이한 질감을 내뿜으면서도, 모두 ‘현대성’과 ‘사람’을 진지하게 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 조각씩 걷는 파리’는 도시 산책 에세이의 확장판이자, 사진으로 기억을 짓는 한 여성 여행자의 파리 기록이다. ‘걷는다’라는 동사는 단순한 이동을 넘어 자기 안팎 세계를 더듬는 촉수다. 저자는 골목과 광장, 숨겨진 카페와 예술공간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독자에게도 ‘낯선 곳을 내 발걸음대로 해석할 자유’를 건넨다. 현지인의 시선과 관광자의 시선이 교차하며 파리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을 해체하고, 붙잡을 수 없는 순간을 사진 한 장으로 봉인하려 애쓴다. 이는 마치 누벨바그의 어느 프레임, 멜랑콜리한 빛 아래 흐르는 삶의 조각을 조용히 붙잡는 영화적 장면을 연상케 한다. 프랑스 문화, 예술, 그리고 일상의 감각적 호흡이 가득한 이 책은 걷기의 리듬으로 도시와 동행하는 독특한 감각을 남긴다.
한편,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는 사회적 담론의 최첨단을 책의 언어로 옮겨온다. 2020년대 중후반, AI와 빅데이터 기술은 이미 삶과 교육, 문화 전반에 스며들었다. ‘부모’라는 정체성은 이 거대한 변화 앞에 새로운 ‘불안’ 혹은 ‘성찰’의 질문을 맞이한다.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는 실용적 조언을 넘어, 본질적으로 부모란 누구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되묻는 인문학적 탐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생활 맥락에서 분석하고, 자녀와의 소통에서는 인간적 온기가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지 질문한다. 실재하는 두려움과 한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성실하게 병치시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21세기 사피엔스』 이후 등장한 다양한 시대 진단서들과 닿아 있으면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AI 변화의 파고를 읽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한 조각씩 걷는 파리’와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는 각각 ‘공간의 의미’와 ‘시간의 흐름’을 탐색한다. 하나는 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사유의 리듬, 또 다른 하나는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디지털 질서의 한복판에서 던지는 부모의 목소리다. 이 두 신간이 나란히 그려내는 지도는, 어찌 보면 현시대 독자 개개인이 짊어진 ‘불안의 시공간’을 여실히 드러낸다. 코로나 이후 사회적 단절과 기술적 가속의 이중성을 체감한 세대에게, 걷기와 양육, 그리고 인간관계의 의미는 자못 묵직해졌다. 문학과 실용서의 접점에서 탄생한 이 책들은 결국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물음을 조심스레 건넨다.
이 외에도 이번 신간 보도에는 예술, 인문,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도서가 소개됐다. 중견 소설가의 산문집, 한국인의 일상 습관을 성찰하는 생활 에세이, 그리고 새로운 과학 교양서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현 시대의 불안을 이야기한다. 출판계는 AI·기술 트렌드를 그 자체로 수용하기보다는, 어떻게 ‘자기 해석’을 붙여갈지에 큰 힘을 싣는다. 이는 최근 국내외 도서 출간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미권 베스트셀러 역시 ‘혁명적 신기술’보다는, 그것을 살아내는 관계와 감정, 일상의 구체성을 다룬 명저들이 주목받는다.
‘한 조각씩 걷는 파리’의 저자는 산책과 사진, 프랑스 도시 속 잔잔한 교차점을 세밀하게 채집해, 도시의 정체성과 인간의 취향, 그리고 외로움을 사색한다. 예술적으로 빛나는 구절들과 힘을 뺀 시선은 마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연출처럼, 순간의 쓸쓸함까지 시각적으로 재구성한다. 작품 전체의 메시지는 ‘도시는 공간마다 다른 호흡을 품는다’라는 점이다. 반면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는 디스토피아적 공포 대신 ‘함께 질문하게 하는 힘’을 던진다. 구체적 사례와 심리 분석, 그리고 AI 양육의 실제적 고민을 장르적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책은 부모뿐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교사, 미래 사회를 고민하는 모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인간을 대신한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두 책 모두에서 발견되는 주요 감정은 ‘불안’과 ‘희망’이다. 각 저자는 불안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해답 혹은 삶의 결을 찾아가는 성실함을 놓지 않는다. 이는 최근 국내외 다수 신간의 흐름이기도 하다. 책이 시대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마주한 이미지는 ‘막막함’만은 아닐 것이다.
문학, 예술, 기술, 그리고 교육. 각자 조각난 키워드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신간 도서의 제목들 하나하나는, 우리가 ‘지금 여기’라는 난장에 놓인 삶에서 대화를 나눌 ‘의제’임을 증명한다. 묵묵히 걷고 함께 질문하는 일이, 가장 소박하지만 중요한 오늘의 미덕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