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시와 무성영화 그리고 9개의 트랙…그의 첫 솔로 앨범을 만나다
세상의 소음이 거친 밤, 서울 홍대 거리의 거리공연을 지날 때마다 뚜렷이 기억나는 음색이 있다. 장기하, 혹자는 그를 ‘풍경을 노래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2026년 9월, 오랜만의 솔로로 돌아온 그가 다시 한 번 음악의 결을 바꾼다. ‘시(詩)에서 시작해 무성영화, 그리고 9개의 음악’이라는 소개. 얼핏 거창한 구절 같지만, 9월 9일 공개될 그의 첫 정규 솔로 앨범엔 무엇이 담겼는지, 카메라 시점으로 차갑게 짚어봤다.
팬들의 기대는 컸다.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이후, 그는 긴 침묵 끝에 유튜브, 영화, 책 등으로 행보를 넓혀 왔다. 현장 영상 속의 장기하는 여전히 ‘말’과 ‘몸짓’으로 공간을 채웠고, 이번 앨범은 그 결실이다. 직접 쓴 시에서 출발한 곡 작업. 그 누군가는 국문학 전공의 냄새를 맡았다고도 했다. 수첩을 들고 골목을 걷거나, 옥상 한 귀퉁이에 앉아 시 구절을 중얼거리다 스마트폰에 녹음한다. 그 모든 촬영의 순간이 실체로 모였다. 그의 음악은 늘 삶 한가운데서 시작됐다.
‘무성영화’라는 키워드. 이는 곡들이 영상 없는 소리, 혹은 미완의 장면처럼 흐르고 있음을 뜻한다. 현장감이 강조된 음향 설계, 불필요한 사운드의 절제. 지금까지 공개된 두 개의 티저 영상에서는, 카메라가 좁은 방을 조용히 비추고, 가만히 숨죽인 순간을 잡아낸다. 음악은 공간을 채우고 침묵을 견딘다. 이 앨범은 어쩌면 ‘영화’가 갖지 못한 시간의 파편을, 음악적으로 재현해내는 실험이다. 현실의 풍경, 식은 커피잔, 넘어가는 시간, 바닥에 떨어진 조명이 모두 한 트랙의 소품이 된다.
취재 도중 만난 관계자에 따르면, 장기하는 “음악은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경직되지 않은 목소리, 직접 연주한 기타와 건반의 생목. 익숙한 ‘장기하 표’ 언어유희도 빼놓지 않았다. 트랙별로 주제를 파헤쳐보면, 어떤 곡은 청춘의 무력감, 또 어떤 곡은 무심하게 흘러 넘기는 일상의 단상을 담아냈다. 특히 타이틀곡은 마치 짧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인물의 감정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몽타주처럼 남긴 음의 조각들이 이어진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의 노랫말이다. 실시간으로 끊기는 호흡, 쓸쓸한 한 줄, 그리고 어딘가 냉소적인 유머.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 순간처럼, 음악은 단단한 리듬감을 유지하되 뒷배경은 흐릿하게 처리된다. 기자가 앨범 일부를 사전 청취하며 느낀 점 역시 ‘공간 바깥’의 정적, 숨겨진 상상력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명확하게 ‘자기 소리’를 아카이빙하는 데 집중했다.
음악계 전반의 반응도 흥미롭다. 기존 밴드 사운드와 달리, 이번 앨범은 1인 솔로로서의 자기 기록에 충실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장기하의 실험성, 평범한 언어의 힘에 주목한다. 거인의 귀환이라 하는 이도 있고, 지나치게 내면지향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단독 정규 앨범은 새로운 ‘한국형 실험음악’의 서막을 알린다. 대중성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호흡을 끝까지 밀고 나간 점이 돋보인다.
기존 음원 차트에서는 빠르게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예고된 트랙의 일부와 라이브 영상은 이미 유튜브 내 조회수 수만을 넘기며, 신선함을 찾는 20~40대 청중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평범한 일상과 사색, 그리고 잠깐잠깐의 허무와 위트를 버무린 음악. 거창한 서사 대신, 현장을 담은 짧은 움직임들이 누적될 때, ‘지금 여기’를 직조하는 사운드의 힘이 드러난다.
국내외 음악상, 평론가들 사이에선 각 트랙의 실험적 시도와 가사 표현법이 조명을 받고 있다. 어떤 이는 “장기하 특유의 건조한 언어, 그리고 삶과 예술을 담담하게 직조하는 방식이 이번 앨범에서 극대화됐다”고 평했다. 현장 중심 취재로 본다면, 이 앨범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중간에 선 작품이다. 단지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 카메라의 안내에 따라 한 순간, 한 음절씩 공간을 비춘다.
9월 9일, 다양한 플랫폼에서 동시 발매된다. 기성 팝의 공식을 거부하고, 매체 간 경계를 뛰어넘는 이번 작업물은 계절의 경계, 개인의 기억, 도심의 밤을 잇는 새로운 시도다. 음악이 삶의 풍경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국음악계의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제 모든 건 청취자 개개인의 감각에 맡겨진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