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우리말 구조대’…셰프·플레이팅, 어려워진 요리 예능

요리 예능의 언어가 복잡해지고 있다. 요즘 TV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각종 음식 예능 프로그램에서 ‘셰프’, ‘플레이팅’, ‘감칠맛’, ‘파인다이닝’ 같은 단어가 너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한글날 특집도 아닌데 방송 화면 아래 자막에 ‘구운 감자에 프로방스 허브 솔솔’ ‘에어프라이어에 겉바속촉’과 같은 말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미식 지식 시험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음식이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는 감각의 장르가 된 지는 오래지만, 이제는 예능 속 요리마저도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맞물려 ‘용어’로 각을 잡아가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우리말 구조대’, 즉 요리 예능에서 한글 번역팀 혹은 설명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흐름이다.

음식 예능은 그 자체로도 트렌드 반영 속도가 빠르다. TV조선, JTBC, MBC 등 주요 방송사의 요리 예능부터, 쿠팡플레이, 티빙 등 OTT 오리지널까지 각기 다른 타깃을 설정하며 독특한 미식 어휘와 트렌디한 연출을 실험 중이다. ‘싱글즈 인 더 키친’은 국내외 젊은 셰프들을 앞세워 ‘프렌치 오마카세’ ‘데끌린(Déglingué)’ ‘게스트로노미’ 같은 전문 용어를, MBC ‘백파더’는 친근한 설명 대신 ‘홈쿡 인플루언서’ ‘레시피 큐레이션’ ‘파티셰’ 등 직관적이지만 체감 난이도가 높은 신조어를 강조했다. 한편 tvN ‘수미네 반찬’과 같은 비교적 오래된 프로그램조차도 ‘에스닉 요리’ ‘글루텐 프리’ ‘슬로우푸드’ 등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키워드에 의존한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국내에 ‘셰프’라는 직업 이미지가 뿌리내린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였다. ‘이연복’, ‘백종원’, ‘최현석’ 등 셰프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면서 음식 자체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과정’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제는 셰프의 옷차림, 주방 플레이팅 도구, 심지어 ‘어떤 재료를 어떻게 설명하는가’까지 모두 패션이자 서사로 소비된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이 음식은 맛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건 폴리시’, ‘로컬푸드 무브먼트’, ‘제철 식재료’ ‘웰니스 테이블’ 같은 가치중심적 키워드가 식문화 트렌드의 한가운데 있다.

주목할 점은 미식 정보를 소비자 스스로 해석하는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포카치아’와 ‘치아바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시청자가 늘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SNS에서 ‘로제 파스타’를 넘어 ‘토마호크 스테이크’, ‘파인 다인 테이스팅 코스’, ‘수블레’ 등을 해시태그로 주고받는다. 글로벌 미식 문화가 SNS와 숏폼, 리뷰 영상, 그리고 오디션쇼를 경유하며 생활 트렌드로 체화됐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가 트렌드 중심 용어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방송을 보는 중장년층, 어린이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왜 갑자기 어려운 말이 많아졌냐’는 피로감이 누적된다.

이런 혼란을 뒤집어보면, 미식 언어의 복잡다단함 자체가 우리 사회의 ‘워너비 소비 욕망’과 ‘자기표현의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리와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존재감을 보여주는 라이프스타일 코드로 급부상하면서, 음식에 대한 접근 방식 역시 ‘스토리텔링’으로 확장됐다. 이전에는 음식점 이름, 요리사의 경력 정도로 그쳤다면 지금은 ‘파인다이닝에서 제공하는 세미 디저트 코스의 플레이팅에 숨겨진 셰프의 페르소나’까지 분석 대상이 된다. 방송사 역시 트렌드를 견인하는 동시에 복잡한 용어와 서사를 통해 시청자들의 ‘미식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소비자 심리의 변곡점마다 ‘키워드’가 새로운 상징 자원을 얻음과 동시에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유행한다. 요리 용어만 해도 ‘한식’, ‘양식’ 구분을 넘어 ‘프로방스풍’, ‘포스트 모던 테이블’, ‘프리미엄 브런치’, ‘컨템포러리 쿠진’ 등이 일상화됐다. 각종 TV 프로그램은 시각적으로 화려한 ‘플레이팅’ 컷, 장인의 손놀림을 클로즈업하는 미학적 영상미로 트렌디함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토속적인 우리말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전문지식 층의 흥미 요소로만 소비된다.

문제는 그 이면에 있다. 한류 콘텐츠 수출로 인해 국내 예능 스타일을 해외 시청자들이 접하게 되면서, 번역·현지화 과정에서 미식 용어의 복잡성이 그대로 전파된다. ‘셰프’ ‘플레이팅’ ‘테이스팅’ 같은 외래어와 신조어가 급격히 늘어나고, 한글 자막·오디오 설명이 그 흐름을 따라가기 벅찬 지점이 종종 발생한다. 이 독특한 언어 유행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대에겐 ‘내가 알아가는 미식 세계의 무대’가 펼쳐진다. 반대로, 대중 친화성에서 멀어지는 심리적 장벽 역시 커진다. ‘요즘 음식 예능은 따라가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방송 리뷰, 시청자 커뮤니티, SNS에서 알게 모르게 번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결국 선택한다. ‘트렌디한 미식 언어’라는 새로운 놀이에 함께 합류하거나, 익숙한 맛해설 프로그램으로 회귀하거나. 음식이 본래 지닌 감각적 즐거움과 사회적 의미, 그리고 언어의 힘이 어디까지 균형을 이루며 진화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의 요리 예능은 어디까지 한글의 본질적 소통을 강화하고, 어디서부터 ‘설명 없는 사치’로 귀결되는가를 자문할 시점이다.

— 배소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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