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돌봄·가정—여성 저임금의 희생 위에 선 대한민국
여성 저임금에 의존하는 돌봄노동 구조의 한계는 더 이상 뚜렷해질 수 없을 만큼 명확해졌다. 최근 수도권 한 복지시설에서 중장년 여성들이 최저임금 언저리, 불안정한 계약, 그리고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이 섞인 고강도의 업무 속에서, 지탱할 힘이 고갈되어 간다는 고백이 연달았다. ‘버틸 사람이 없다’는 한 마디에 응축된 이 구조적 위기는 단순히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 구조적으로 위임된 돌봄노동, 한국 사회가 휘청이고 있는 중층적 모순의 지표다.
현실에서 돌봄노동은 공공‧민간기관, 요양시설, 돌봄센터, 자가노동 등 여러 경로로 공급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다. 2025년 기준, 전국 돌봄노동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그들은 대개 생계유지를 위한 파트타임 일자리, 혹은 퇴직 후 육아·가사 경험을 활용하는 형태다. 지급되는 임금은 평균 근로자 임금의 60% 수준에 머물고, 이마저도 고용 안정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남성들이 해당 직군에 진입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저임금’과 ‘사회적 인정의 부재’라는 분석이다.
고령화는 돌봄노동 수요를 가파르게 늘렸다. 이미 2026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3%를 넘어서면서, 요양병원, 방문간호, 가사지원, 장애인활동지원 등 다양한 돌봄 영역의 필요가 급증하고 있다. 급증하는 요구에 비해 돌봄 인력은 인건비의 절감을 내세운 채 지속적으로 제한되어 왔다. 이 과정에선 공적 지원 시스템—정부 예산, 건강보험, 각종 복지 재원—이 턱없이 모자라 적자 구조로 빠져들고, 결국 저임금 여성 인력에 대한 착취성 구조가 고착화된다.
2025년 전국 요양보호사 평균 월급은 180만 원을 하회했고, 사회복지시설 생활지도원은 초과근무와 비상근무가 일상이다. 노동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장시간 근로, 휴게여건 미비, 보호대상(노인·아동·장애인 등)으로부터의 신체적·심리적 위험 등의 문제가 고질적이다. 그러나 개선을 요구해도 돌아오는 것은 “대체 인력도 없다”는 답변뿐이다. 즉각적인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규모 이탈과 돌봄 공백은 기정사실이다.
여성 돌봄노동자가 버티지 못하고 종사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은 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여성들조차 돌봄업 진입을 기피한다. 비정규직, 저임금, 미래 존중감의 부재—이 세 가지가 압도적 진입 장벽에 가깝다. 여성은 마치 ‘가족의 일’로 돌봄을 내부화하도록 요구받고, 외부에서 이를 직업화할 때엔 사회적 인정이나 보호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경제위기, 복지예산 삭감 국면마다 여성노동 중심의 일자리는 감원 1순위가 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법과 제도의 미흡 역시 반복된다. 현행법상 사회서비스종사자 보호 조항이 있지만, 실질 적용은 느슨하다. 인력난이 심각한 지방 저소득계층 밀집 지역일수록 사각지대는 더욱 넓다. 최근 등장한 ‘사회서비스원’ 등 공공기관 주도 모델도 저임금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채 복지현장의 불안정한 고용구조만 공고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돌봄노동, 특히 여성 저임금 노동 문제는 단순 고용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복지·가족·보건·노동문제를 얼마나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내는 리트머스지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율은 꾸준히 늘고 있으나,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에서의 비중은 여전히 최고 수준, 성별 임금격차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 뿌리에는 무임금·저임금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재와 정책 우선순위의 후순위화가 자리한다.
정치권은 매번 선거철만 되면 ‘돌봄국가’ ‘여성 일자리 확충’을 외치지만, 구체적 현실 개선은 안보인다. 예산 배분에선 보육·요양·방문간호 등의 현장 예산이 최우선에서 늘 뒷전으로 밀린다. 현장 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더는 희생을 강요받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끝없이 내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위로 아닌 생존의 벼랑 끝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임금, 고용안정, 위험노동 보호 같은 핵심 돌봄노동 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개선책과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돌봄 현장에서 ‘더는 버틸 사람이 없다’는 경고가 모두의 위기로 바뀌기 전에,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 모든 돌봄노동 인력이 공평하게 존중받고,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사회—이것이 근본적 복지국가의 출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송예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