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 관계 재조명: 현실적 안보 파트너십이 가능한가

2026년 7월 현재 국제질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 한반도 위기 등으로 복잡하게 재편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과 주요 유럽국가들이 한국과의 안보협력 확대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전통적 안보동맹이었던 미국 외에 유럽을 새로운 전략 파트너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안보 파트너’로 유럽이 자리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양국의 국익, 지역 안보환경, 외교적 디테일 등 다양한 변수와 한계가 공존한다.

한국-유럽 관계는 무역, 혁신기술 등 전통적 경제협력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 EU는 한국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이자, 인적교류와 첨단기술 공동개발에서도 협력 폭을 넓혀왔다. 최근에는 ‘2023 한-EU 전략대화’ 등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공동 우려 표명, 한반도 평화 수호에 대한 유럽 측 지지 등이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독일, 프랑스 등 주요 EU 회원국이 인도태평양기본전략안을 별도로 준비하는 등 전략적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유럽발 안보 파트너십 논의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측이 실질적 안보협력체계로의 전환을 달성하기에는 복합적 난점이 명확하다. 첫째, 국제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 유럽은 특히 러-우 전쟁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 문제로 지정학적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은 중국, 북한, 러시아와 인접해 극동 안보 딜레마에 놓여 있으며 기존 미-한 동맹이 기본 구도다. 유럽과 한국 사이에는 안보 이익의 동기, 위협 인식, 응전의 강도가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제도적 한계가 상존한다. 한-EU 간에는 미국 나토와 같은 집단방위조약 혹은 상호방위조약이 부재하다. 현재 협력은 주로 외교장관, 국방장관 대화 및 비군사적 정보공유, 사이버 안보, 평화유지 활동 등 제한적 영역에 머무른다. 나토 ‘파트너국’ 지위 논의가 있긴 하지만, 실제 동맹 수준의 군사적 개입 혹은 방위공약이 담보된 것은 아니다. 유사시 한국이 유럽의 군사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제도적으로 열려있지 않다.

셋째, 경제안보·기술안보 분야에서의 교집합은 커지는 반면, 군사안보에선 상호 실익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유럽은 한국과 반도체, 전기차, AI 등 첨단산업에서의 협력을 적극 도모한다. 북핵 대응이나 미중견제 국면보다 현실적으로는 경제블록 안에서의 공급망 협력, 공동 R&D, 기술표준 선점 등이 더 중시되는 분위기다. 이는 한-EU 협력의 사실상 무게중심이 안보보다는 경제·기술협력에 여전히 실릴 수밖에 없음을 방증한다.

네 번째로, 외교 신뢰 구축의 불균형도 지적된다. 유럽 주요국은 가치외교와 규범 기반의 다자주의 원칙을 내세우나, 각 회원국의 개별국익을 최우선 한다. 한국 역시 대외정책에서 미·중·일 등 주변강국과의 균형을 중시하다 보니, 유럽에 안보파트너 역할을 전적으로 기댈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다. 이에 따라 군사적 상호신뢰를 축적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정부 내에서는 미국 중심 외교의 구조적 위험(미국의 점진적 동북아 개입 축소 가능성, 미-중 사이에서의 전략적 압박 등)에 대비해 새로운 외교 카드로 유럽과의 안보 협력 채널을 구축하려는 방안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실제로 한-EU 정상회담이나 한-나토 회의 등에서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 ‘자유민주주의 가치 동맹 강화’, ‘대(對)북 억지력 확대’ 등 화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실질 안보보장, 유연한 공동군사작전 능력, 상호 위기 시 행동계획 마련 등은 아직 가시적 결실이 미흡하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단기적으로 유럽은 한국의 전통적 안보동맹이 되는 구조적 개편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 중장기적 ‘다자안보 네트워크’의 하나로서 유럽의 전략적 역할 확대는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럽의 글로벌 안보에 대한 의지가 커졌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한국 역시 경제·기술협력에서 쌓은 신뢰와 외교 세력을 기반으로 유럽과 군사·방위 협력의 저변을 향후 단계적으로 넓혀갈 필요가 있다.

결국, 양자가 추구할 현실적 목표는 신냉전 구도 속 “글로벌 중간세력” 네트워크 형성이다. 미국의 변동성과 미중 패권경쟁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한국은 유럽을 군사동맹이 아닌 정치경제·기술·지정학적 다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호 현실적 한계를 전제로 점진적 신뢰구축과 제도화에 집중해야 한다. 유럽 역시 한국을 단순한 동아시아 외곽 파트너가 아닌, 전략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협력대상국으로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유럽 간의 안보 파트너십 확대 논의는 아직 초입 단계다. 큰 프레임에서 상호 현실적 이익과 신뢰, 제도적 기반 마련이 병행될 때, 국제적 변동성 국면에서 양자는 기존 동맹 구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 김도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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