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시조 수상작-일과/ 장예은
어쩌면 삶이라는 길목에서 우리는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너무 오랫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026 매일시니어문학상’의 시·시조 부문 수상작 <일과>는 고단한 일상의 윤곽을 응시하게 한다. 장예은 시인의 작품은 삶의 굴곡진 의자에 앉은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어루만짐 같았다. 수상 소식과 작품이 공개되자, 시네 여백에 드리운 아득한 소용돌이가 작게, 그리고 점점 더 또렷하게 독자의 감정선에 파문을 일으킨다.
소년 빛깔로 가득 차 있던 우리의 하루는 어느덧 강퍅한 책임이라는 성인의 옷을 걸친 채, 일과를 버티는 시간으로 변했다. 장예은 시인은 바로 그 시간들을, 반복 속에 켜켜이 쌓인 침묵과 한숨, 그리고 이따금 새어 나오는 희망의 언어로 길어낸다. 시 ‘일과’는 계절이 바뀌듯 똑같지만 매번 다른, 한 인간의 하루를 농밀하게 붙잡는다. “허름한 작업복에도 남아있는 온기”처럼, 세상에 잊힌 자리가 곧 알뜰히 누군가의 ‘오늘’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거기서 목격한다.
문학상 시·시조 부문 수상작들 가운데 <일과>는 특히 여운이 길었다. 한줄 한줄에 남겨진 멈칫하는 숨결, 마치 흙탕물 위로 비치는 햇살 한 조각처럼, 묵은 고단함 안에서조차 온기가 싹튼다. 수상 선정위원들은 바로 이 점, 반복이 삶을 닮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생의 빛을 거두지 않는 태도에 주목했다. 바쁜 도시의 매연 틈에서도 시인의 눈길에는 한 줌 퇴근의 바람, 식탁에 올려진 소박한 저녁, 작은 이를 위한 포근한 뒷모습 같은 잔상이 묻어난다.
시인 장예은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노라면, 사소한 것이 곧 위대할 수 있음을 새겨 읽게 된다. 그는 “노을 진 아파트 골목에 남겨진, 발자국 같은 마음”이라고 자신의 표현을 빌렸다. 이처럼 <일과>는 바쁨을 이겨내는 사람들,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하는 이름 없는 이들을 언어로 감싸 안는다. 오늘도 일터를 나서는 노인의 굽은 등에, 아이 손 잡은 부모의 굳은 손가락에, 쌓여가는 어딘가의 서류에 녹아드는 소망까지 곱게 펼쳐진다. 그 세계 안에서 일상은 결핍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는 이유 혹은 작은 기도다.
동시대의 문예상과 시상식 현장에는 늘 격려와 위로, 새로움이 뒤섞인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의 의의, 즉 세대를 관통하는 문학적 의지가 장예은의 수상작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이듦 속에 피어나는 감정의 주름, 일과의 겹겹이 얹힌 체념 아닌 희망, 그것들이 시인의 눈을 닮아 우리에게로 스며든다. 최근 몇 년간 사회 고령화라는 단어가 그저 통계처럼 느껴졌다면, 이 시는 누군가의 ‘내일’이 어려진 단단한 얼굴을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다른 수상작 ‘저녁의 대화’(황진영), ‘반복의 노래’(이태형) 등과 비교하면, <일과>는 유난히 절제된 언어 안에 애틋한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외려 더 클리셰에서 멀어진, 찍힘 없는 잉크처럼 말갛고 투명하다. 한국 현대시가 노령화와 일상성을 어떻게 품고 갈지에 대한 고민, 세대를 연결하는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시도 안에서, 이 수상작은 아득한 시계소리처럼 묵은 기억을 울린다.
‘일과’를 읽는 순간마다 마음 한켠에는 소확행이 아닌 ‘소확진’의 정서가 내려앉았다. “이 모든 노동이 모여 결국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시인의 한 문장은, 삶의 무게로 치여 휘청이는 이들에게 작은 등불을 쥐여주는 듯했다. 최근 출간된 ‘매일이 마지막 날처럼’(윤은자) ‘하루도 쉬지 않고’(권재영) 등 우리 시대의 노동과 노년을 다룬 책들도 다시금 주목받으며 문학상 수상작과의 연결점을 짓는다. 각각의 서사 속 노동은 무의미하지 않다. 누구의 하루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피해의식이 아닌, 오히려 마지막까지 살아내길 바라는 잔잔한 응원이 배어 있다.
‘2026 매일시니어문학상’은 단순한 시상식 그 이상이었는지 모른다. 장예은 시인의 <일과>는 잊혀진 자리에서 건진 아침 햇살처럼, 평온한 감정과 진득한 묵상이 엮인 축복이었다. 어느덧 눈을 감는 하루 끝, 묵묵히 삶을 적시는 이 시는 독자들에게 ‘반복’이 아니라 ‘희망’을 새기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일상의 목소리가, 이 한 편의 시에 영원히 머물기를 바란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