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프리한 19… 10년 예능의 마지막 밤에

오늘 저녁 풍경은 유난히도 익숙한데, 그 익숙함 뒤에 감춰진 것들이 중요한 밤이다. 2016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530회의 대장정을 달려온 ‘프리한 19’가, 바로 오늘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다. 10년 간의 시간, 이 숫자는 한 프로그램, 한 포맷, 한 대중문화 내러티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케이블과 온라인,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이 부침을 거듭하는 와중에 오로지 이야기의 힘 하나로 자기만의 궤도를 걸었던 이 예능은 그 자체로 작은 우주였다.

수십 개의 ‘랭킹쇼’ 포맷이 쏟아져 사라졌던 지난날, ‘프리한 19’는 리스트에 담긴 사연들로 우리 삶과 맞닿았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음식 19’, ‘떠나고 싶은 여행지 19’, ‘아찔한 순간 19’… 숫자로 정리된 주제 뒤에는 제작진의 유쾌함과 섬세함, 그리고 언제나 인간적인 온기가 녹아 있었다. 한 주 한 주 발표되는 순위와 선택들은 사실 완벽한 잣대가 아닌, 우리 모두 사는 세상이 품은 결의 목록들이었다. 순위를 만드는 그 순간마다, 삶의 작은 우선순위에 대해 슬쩍 물음표를 던지는 제작진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 프로그램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힘은 단순히 웃고 떠드는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균 시청률 1%~2%라는 수치는 화려하진 않았으나 오히려 조용히, 길게 사랑받는 야경처럼 다가왔다. 정보와 스토리텔링이 적절히 배합된 형태, 콘텐츠와 현실의 경계선에서 발끝을 딛고 서 있던 출연진은 젊은 세대를 끌어들였고, 중장년에게도 친근했다. 미묘한 울림이 있었다. 19가지 이야기를 짚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자신의 서랍 속 추억과 꿈, 바람을 꺼내 보는 사람이 됐다.

업계의 전문가와 평단은 ‘프리한 19’를 ‘유쾌한 교과서’, ‘현대인의 생활 백과사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다는, 약간은 철학적인 배려 말이다. 방송계가 새로운 포맷을 향해 끊임없이 변주를 시도하는 지금, 오리지널리티란 더더욱 소중해진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한결 같은 자세로, 묵묵히 이야기를 읊조리던 한 팀이 1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경의에 가깝다. 이 프로그램의 종료 소식은 어딘가 유성우처럼 반짝인다. 잠깐의 빛, 남은 궤적,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는 여운까지도 아름다운 이별이다.

꾸밈없는 리액션과, 번뜩이지만 품격 있는 드립, 그리고 제작진의 따뜻한 구성은 트렌디한 다른 예능과 ‘차별화된 텍스처’를 만들어냈다. 해외 팬들에게도 ‘프리한 19’는 K-예능의 진입장벽을 낮춰준 입문서였다. SNS에는 마지막 회를 앞두고 추억담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세월이 쌓인 충성 팬들의 목소리, “이젠 뭘 보나”, “수요일 밤이 허전하다”는 투정조차 프로그램의 존재감을 입증한다. 포맷이 바뀌고 MC가 바뀌어도 기획의 진정성은 한결 같았고, 시청자와의 연결고리는 끊기지 않았다. 결국 19개의 카운트다운은 우리 각자의 이야기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 방송은 이 10년을 오롯이 담았다. 초창기 MC, ‘레전드’ 에피소드 클립, 방송 뒷이야기, 시청자들의 사연까지 한데 모이며 장식한 피날레. 익숙하지만 낯설고, 익숙한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순간을 마음 속에 담아 보내야 한다. 문화란 그렇게, 익숙한 낡음이 새로운 감동으로 변주되는 과정의 연속임을 또 한 번 확인한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순간, 그 빈자리에는 곧 또 다른 이야기가 깃들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프리한 19’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포맷이 누군가의 기억 속 작은 불씨가 되어 각양각색 이야기를 또 다른 어디선가 피워낼지도 모른다. 한참 뒤, “그때 프리한 19”라는 추억 한 귀퉁이에서, 모두가 한 번쯤 ‘나만의 19’을 떠올려볼 지도 모른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엔딩곡이 오래도록 내귄다. 긴 여정 끝에 건네는 이별, 우리는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린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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