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향 이사장의 시, 경계 너머서 만난 ‘안녕’의 울림
낮은 담쟁이 잎새에 달, 그늘처럼 스미는 하루의 감정. 여름의 끝자락, 불현듯 ‘안녕’이라는 시집이 국제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사장 김선향, 그 이름 앞에 ‘시인’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이 쌓인다. 책의 제목은 ‘안녕’. 너무 단순하고 간명한 단어가, 곧잘 복잡해지는 현실을 잠깐 멈추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안녕’이란 말에 묻어나는 이중성을 너무도 잘 안다. 헤어짐에도, 만남에도, 안부에도 스며드는 말. 2026년, 이 언어로 위로와 경계, 분리와 연결을 노래한 김선향의 목소리는 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끄는가.
첫 장을 펼치면, 질끈 동여맨 감정의 고삐가 느슨해진다. 작고 사적인 슬픔, 거리를 둔 방관자적 시선, 다시 떠오르는 기억의 자잘한 파편들이 시 곳곳에 흘러간다. 김선향의 문장은 때로 쓸쓸하고, 때로는 가슴속 불씨처럼 뜨겁다. 북한 사회와 남한 사회, 모두를 경계로 둔 희미한 위치에서 그는 오히려 ‘경계 너머’를 쳐다본다. 문학상 수상 소식은 단지 외연 확장이 아니었다. 그의 시는 언어의 분단, 감정의 분열, 시간의 이질감까지 아우르며 읽는 이로 하여금 누구나 자기 내면 속 ‘경계’를 떠올리게 한다.
단순한 서사로 흘러가는 산문과 달리, 김선향의 시집 ‘안녕’은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잔잔하고, 불규칙하게 마음을 울린다. 사람들은 뉴스 검색창에 익숙한 ‘분단’ ‘북한’ ‘남북’의 단어를 거듭 입력한다. 그러나 김선향은 사회적 함의를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문학 안에서 녹여냈다. 다수의 언론인들이 ‘북한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조명했지만, 정작 그녀의 시는 담백함 그 자체다. 신파도, 장황함도 없다. 오히려 그녀의 언어는 하늘을 향해 흩날리는 벚꽃잎 같다. 바람 한 점만 있어도 흔들릴 듯 휘청인다. 한 줄, 한 문장이 고요히 가슴에 닿고, 이별 직전의 침묵이나 재회의 기쁨과 닮았다.
‘안녕’의 수상은 단어 하나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남북의 역사적 맥락을 가로지른다. 시인은 통일을 외치지도, 이념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자신이 품은 세상을 오롯이 노래하며, 이 땅에서 살아낸 시간의 무게를 기록한다. 도시의 허공, 기차가 달리다 멈춘 플랫폼, 단절된 강 저편의 안개. 경계의 파도 위에 띄운 짧은 인사. 이 ‘안녕’이 세계로 나아갔다는 소식은, 바람을 타고 멀리 열린다.
국제 문학상들이 시를 선택하는 기준은 대체로 ‘보편성’과 ‘고유성’ 사이의 긴장이다. 김선향의 경우,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개인의 시선에서, 누구도 쉬이 함부로 헤아릴 수 없는 상흔들이 시 언어에 덧입혀졌다. 90년대 무렵, 한국 시가 내포했던 고통의 서사와는 다른 방식이다. 사회적 의미를 품되, 무겁지 않게, 적당한 거리두기 속에 마음의 아지랑이를 남긴다. 남북 문제에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세밀한 일상의 이미지로만 세계와 조응한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세계는 이 미묘한 균형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다.
여성 시인이자 교육자로서, 그리고 북한에 뿌리를 뒀던 이력이 김선향만의 언어를 만들었다. 현실과 이상, 고향과 타향 사이의 간극, 실존과 기억이 교차하는 공간. 그런 ‘결핍’과 ‘거리’에서 퍼져 나오는 감정의 파장이 ‘안녕’ 속에 흐른다. 문학상의 트로피 자체보다, 시집 한 장 한 장이 내뱉는 은은한 숨결이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준다. 우리는 왜 이 ‘안녕’에 끌리는가? 어쩌면 너무 잦은 이별, 매번 흔들리는 경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라서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책방에서는 표지조차 수줍은 듯한 ‘안녕’이 손때에 물들고 있다. 누군가는 고요한 읽기 속에서, 누군가는 밤샘 열람실에서 이 시와 만난다. 무엇이 김선향의 ‘안녕’을 특별하게 만들었는지,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은 어떤 감정일지도. 단조롭지만 결코 심심하지 않은 빈칸, 바람처럼 불어오는 시의 언어. 그 여백에서 우리가 나눈 인사가 결국 희망임을, 상실이 곧 만남의 시작임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멀리 북녘에서부터 시작된 감정이, 탁 트인 세계의 무대까지 닿았다. 여름 안개처럼 퍼지는 김선향 시집의 파문. 문화는 가장 먼 곳에서 오히려 가장 가까운 마음을 불러온다. 오늘 이 ‘안녕’은, 이별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되고 있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