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조대흠]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누군가의 부재는 때때로 그 존재의 실체보다 더 무겁게, 더 깊게 남는다. 조대흠 작가의 오늘 칼럼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한 권의 책을 앞에 두고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서 우러나오는 유산의 성질을 다정하면서도 분석적으로 직조해낸다. 직접적인 비극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문장은 소리 없는 울림처럼 읽는 이를 붙든다. 남겨진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물리적 유품이든, 잊혀진 습관이든, 남은 자들의 일상의 빈틈이든, ‘떠남’ 이후의 세상은 결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조 작가는 남겨진 것에 초점을 맞추며, 자신의 기억이 아닌, 남아 있는 자들 각자의 ‘받아들임’을 통해 죽음과 이별의 의미를 다시금 새긴다.
단순한 ‘추모’에 머물지 않고, 유산의 복합적 층위를 짚어내는 필치가 돋보인다. 처리되지 않은 상실감이, 때때로 집안의 낡은 화분이나, 다 읽히지 않은 편지들, 혹은 늘 따뜻하게 우러나오던 커피잔에 스미듯이, 우리 일상 이곳저곳에 잔존한다는 그 사실. 조대흠 작가는 이를 보편적 경험으로 끌어올리고, 그 순간 묘하게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확장된 메시지를 던진다. 다양한 작품 군, 이를테면 하라다 마하의 소설이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결말 장면이 떠오른다. 죽음 이후의 삶은 여전히 현재형이고, 부재의 존재가 동사(動詞)처럼 활동한다는 조대흠의 시선은 감독적 직관 혹은 저널리즘적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은 죽음 이후, ‘유품’이라는 소재에 과도히 파묻히는 대신 그 유품과 대한 ‘감정의 거리 두기’에 시선을 건넨다. 남겨진 이들이 만드는 새로운 일상, 소소한 습관의 변형, 반복되는 기도와 작은 침묵까지. 저자는 이 광경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진 이들의 흔적이 남은 자들의 매일을 영리하게 변화시킴을 포착한다. 상실은 곧 창조가 되기도 한다. 기자로서, 그리고 한명의 독자로서 필자는 여기에 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 속 인물들이 교차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봉준호 감독이 ‹옥자›를 통해 전달한 이별의 파격적 해석이나, 넷플릭스의 히트 드라마 ‹더 크라운› 속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고독한 슬픔처럼. 이 글 속엔 우리 삶의 ‘죽음’이 여전히 살아 있는 채로, 기꺼이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 남겨지고 있다는 희미한 낙관도 흐른다.
때로 문학은 ‘떠나는 자’가 아닌, ‘남은 자’를 더 집요하게 그린다. 최근 출간된 한강의 ‘작은 것들의 신’이나, 일본 작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같은 작품들 역시 상실 이후의 현실과 환상에 초점을 맞춘다. 조대흠의 글은 이렇게 동시대 문학의 흐름과 감각을 공유한다. 한 문단, 한 단어마다 상실의 무게와 그 안의 희망,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무력감이 교차한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친밀함과 거리감, 애도와 수용이라는 층위에서 긴 진동을 남긴다.
2020년대 중후반 한국 문학계의 주요 화두가 ‘상실 이후의 변주’라면, 조대흠 작가는 이를 사회적, 개인적 경험 모두를 포괄하는 프레임에서 바라본다. 죽음이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 기능한다는 사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들이 이제는 사라진 것과 맺는 복잡한 관계망에 대해 섬세하게 짚어간다. 기자로서 나는 이 글을 통해 어떤 이별에 담긴 진실과 그 다양한 형태를 함께 곱씹게 된다. 상실이 던지는, 때때로 폭력적일만큼 날카로운 질문—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떠나보내는가?—에도, 저자는 성근 위로가 아닌 삶의 견고함과 변화 가능성으로 답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초개인화된 오늘의 세상, 소셜미디어와 OTT 플랫폼의 세계 속에서도 유의미하다. 기억과 추모가 해시태그로 소비되는 시대라 해도, 결국 ‘남겨진 것들’은 우리 안에, 책장의 틈 어딘가에 남아 묵묵히 말을 건넨다. 조대흠의 언어는 그 조용한 속삭임을 슬프지 않은 언어로 번역해낸다. 치장되지 않은 글이기에 더 와닿는, 조용한 위로.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