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잠시 스치는 곳이 아닌 ‘머무는 도시’로의 변신
지리산 둘레길 너머로 아침 안개가 살짝 노니는 하동의 풍경은, 그저 스쳐가는 여행자에게조차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최근 머무는 관광도시로 도약하려는 하동의 움직임은 이런 자연의 여운을 더 진득하게 체험하고픈 이들에게 특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장용군 전 경남교육청 예술교육원장은 최근 기고문에서 하동의 잠재력이 여행자들의 ‘머묾’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국의 주요 지방 관광거점들이 ‘짧은 체류’ 일변도에서 벗어나면서, 하동 역시 풍부한 생태·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체류형 관광’ 중심 도시로 거듭나고자 지역 곳곳의 연결성을 높이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하동은 섬진강을 따라 펼쳐진 녹차밭, 송림 숲길, 아기자기한 한옥 카페와 로컬 식당, 그리고 갓 구운 빵냄새가 감돕는 골목길이 어우러진 여행자의 쉼터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하동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주요 명소에서 인증 사진 하나 남기고 짧은 산책 후 돌아가는, 이른바 ‘스팟형 관광’에 머무르곤 했습니다. 장 전 원장은 이 같은 단기 체험 위주의 여행만으로는 하동 고유의 풍경과 지역민의 삶, 그리고 문화적 유산이 충분히 전해지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하동 본연의 온도를 깊이 느끼기 위해선 공간과 공간, 사람과 공간, 여행자와 일상이 촘촘히 연결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최근 하동 평사리 들판에서는 밤마다 클래식과 국악이 어우러지는 작은 음악회가 열려 현지인의 사는 이야기, 여행자의 감상이 자연스럽게 섞여듭니다. 그 자리엔 전통 주막의 따스한 차 한잔,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 작은 갤러리와 북카페까지 골목마다 저마다의 색깔로 손님을 맞이합니다. 이런 ‘머무름의 공간’들이 다채롭게 얽혀야 여행자는 어느 한순간, 하동의 주민이 되어 봄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주요 지역의 사례를 살펴보면, 순천만 국가정원은 ‘정원 옆 마을 투어’, 군산은 서점·카페·게스트하우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골목 여행’을 강화하며 재방문 고객을 빠르게 늘렸습니다. 또한 제주도 역시 테마별 마을 투어·로컬 체험을 중심으로 머무는 공간별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삽시간에 성공했습니다. 하동이 이러한 지역과 차별점을 갖기 위한 핵심은 ‘연결’에 달려 있습니다. 장 전 원장은 이 연결이 단순한 교통망 확충이나 명소를 해설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문화클러스터·마을 단위 거점·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한 느슨한 네트워크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올해 하동군은 ‘머무는 관광도시’를 슬로건으로 해, 체류형 관광 시범마을을 선정하고 동네별 맞춤 체험 하우스, 마을주도형 카페·공방·게스트하우스 지원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민과 여행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안내사 개념(로컬 라이프 큐레이터)도 도입되어 단순 안내가 아닌, 주민 일상에 여행객을 자연스럽게 초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방문 인증만 남기고 떠나던 소박한 ‘중방마을’이나 ‘악양면’에선, 이제 한적한 시골문화와 차 마시는 풍경까지 여행 코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습니다. 밤이면 나지막이 흐르는 섬진강 소리, 푸근한 밥상에 둘러앉은 여행객과 마을 어르신이 나누는 이야기가 작은 축제처럼 이어집니다.
물론, 단기간에 머무는 관광 트렌드로 완전히 바꾸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공간의 질적 매력도 필요하고, 교통 시스템이나 숙박·체험 컨텐츠의 다양성도 필요합니다. 실제로 일부 여행객은 “여전히 교통이 불편하고, 밤문화를 즐기기엔 옵션이 적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평사리 들녘의 작은 공연이 입소문을 타고, 산책로 곳곳에 사진을 찍을 만한 포인트가 더해지고, 기존 카페들이 지역주민과 협업해 독창적인 먹거리를 내놓는 모습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타 지역의 유사 전략이 실제 성과를 거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역 고유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깊은 체류 경험을 쌓게 한 순천과 군산, 제주 등의 시도는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방문객 소비가 증가하고, 창작과 예술·공예 분야의 성장도 이뤄졌음을 보여줬습니다. 하동이 머무름의 여운을 크게 만들기 위해선 로컬 브랜드 육성, 축제와 예술행사·커뮤니티 체험 등 다양한 연결고리를 지속적으로 넓혀야 할 것입니다.
요즘 여행은 오래 걸어야만 길의 온기, 사람의 정, 공간의 숨겨진 이야기에 닿을 수 있습니다. 하동은 어쩌면, 빠른 SNS 인증샷에 열중하던 이들도 잠시 멈춰 곁에 있는 존재와 밥 한 끼, 밤공기, 그리고 느린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그런 곳입니다. 연결된다는 것은 ‘삼삼오오 모여드는 나들이객’과 ‘고요한 산골마을’ 사이에 서서히 번지는 우정 같은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변화가 하동의 숨결을 오래 지켜줄지, 앞으로의 여정을 지켜보고 싶어집니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