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ICT 전략대화 재개, 디지털 협력의 변화와 글로벌 기술질서의 교차점

8년 만에 한중 ICT 전략대화가 전격 재개되었다. 한국과 중국 양국이 기술·디지털 분야의 포괄적 협력 체계를 다시 공식화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이례적이고, 글로벌 기술 패권 구도 하에서 특히 중요한 변곡점에 해당한다. 2026년 8월 현재, ICT(정보통신기술)는 EV(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반도체까지 모든 미래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좌표로 기능한다. 중국은 ‘디지털 신실크로드’ 전략을 공공연히 표방해왔고, 한국 역시 디지털 플랫폼 정부·AI, 정보보안, 6G 등 분야에서 세계 선도국을 자처해왔다. 8년간 잠정 중단됐던 고위급 전략대화의 부활은, 양국 모두에게 미래 성장동력과 위기관리의 절박함이 교차한 세기적 장면이다.

양국 신재생산업·EV·배터리 협력 노선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중국 CATL-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간 배터리 실적 경쟁, BYD-현대차의 동남아 EV 주도권 다툼 등 치열한 격전지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블록체인, 인공지능, 양자 네트워크 등 2030년 포스트 ICT 패권까지 내다보며 정부 주관의 대규모 투자와 행정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K-디지털 DNA, 즉 우수한 ICT 인프라와 스케일업(Scale-up)을 향한 중견 스타트업 생태계 역시 고유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과연 이번 회담은 단순히 ‘외교적 신호’ 이상의 실질적 기술·산업적 교차점을 만들어낼지, 국내외 업계는 긴장과 기대를 경계선에 올려놓고 있다.

협의 테이블에는 수출 규제∙데이터 국경∙5G/6G 주권∙AI 윤리 등 기술주권 이슈가 올랐다. 특히 데이터 로컬라이제이션(자국 내 데이터 저장) 문제, AI 알고리즘 공개, 정보보호 장벽, 기업 간 배타적 특허권 갈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중국은 2024년 이후 ‘중국제조2025 디지털화 로드맵’을 기반으로 ICT 내재화 전략을 강화해온 반면, 한국은 EU 및 미국과의 기술규범 동조화에 방점을 찍었다. 즉, 양국 ICT 협력 선언이 곧바로 모든 민감한 기술이전·데이터 개방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다만, ‘공동 스타트업 육성’, ‘청년 디지털 인재 교류’, ‘상호 시장 접근성 개선’ 등 신뢰구간이 형성되는 실무 의제는 실행력 제고의 실마리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글로벌 EV·배터리·AI 시장에서 한중 기업이 맞부딪히는 국면은 더욱 노골화됐다. 2025년 기준 EV 점유율 아시아 1위는 BYD(중국), 2위는 현대차(한국), 글로벌 배터리 M/S 1~3위는 CATL-LGES-Panasonic 순으로 굳어졌다. 본격화된 정부 간 전략대화는, 단순히 기술 공동개발 차원을 넘어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과 ‘디지털 규제 프레임워크’ 조율로 나아간다. 만일 일정 수준의 상호 기술표준·연구데이터 공유가 성사된다면, 한국 기업은 중국식 규모의 시장시험과 인프라 활용의 이점을, 중국 기업은 한국식 혁신기술 촉진 메커니즘과 국제 신뢰도의 일부를 공동 획득할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의 디지털 동맹도 이와 비슷한 현상 변화를 촉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양국 ICT 전략대화가 ‘친환경 신산업’을 핵심의제로 삼은 점이 단연 주목된다. 재생에너지 발전 모니터링, EV 충전 인프라 공동설계, 이차전지 원재료 공동조달, 탄소중립형 데이터센터 모델 등 실용적 파일럿 프로젝트가 논의됐다. 이는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유럽 CBAM(탄소 국경세) 등 세계적 녹색산업 규범 경쟁 구도에 대응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과 한국의 EV·배터리 소재 공급망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어, 디커플링(탈동맹)이 아니라 ‘리콤비네이션(재결합)’ 시나리오로 전환될 여지 또한 크다.

하지만, 신속한 디지털 개방과 규제 협력에는 구조적 난관이 존재한다. 중국은 여전히 정보검열/사이버보안 의제를 국가안보와 직결시킨다. 한국 역시 AI, 데이터 인권 등 규범 확충이 지체된 측면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중 ICT협력이 단일기업•단일분야에 국한된 ‘롱테일식 협상’으로 끝나지 않고, 스타트업-중견기업-대기업을 연결하는 ‘수평 동맹’의 실질로 전환되려면, 투명성·지속성·단기 실적 중심주의의 한계 극복이 필수적이다. 반도체·배터리·AI 등 글로벌 표준전쟁 속에서, 이번 전략대화는 기술주권-시장주권-환경주권이 3축 균형을 이루는 복합적 로드맵 모색의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미-중 기술분쟁의 지정학적 역학관계, 일본-유럽-북미의 디지털 블록화 가속, 탈탄소 인프라 국제 기준의 불확실성 등이 변수가 된다. 그러나 기술은 결국 인간과 산업, 정책의 상호작용 속에서 궤적을 완성해간다. 한중 ICT 전략대화의 재개가 ‘기술 보호주의 극복’과 ‘혁신 생태계 확장’ 양자를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면, 글로벌 EV·AI·배터리 경쟁에서 동북아가 새로운 미래축으로 도약할 명분과 실익 모두를 확보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지금의 움직임은, 단순 물밑 협상과 외교적 의전 절차를 넘어 실질적 미래 기술질서의 교차점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 강은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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