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저작권, 음악산업의 새벽 불빛을 논하다
한여름 밤의 음악이 한 번도 들리지 않은 미래의 물결에 진동한다.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는 이른 시일 내 ‘AI 활용 음악’의 저작권 등록을 전격 보류한다고 밝혔다. 미지의 시대적 변화와 구태의 이력이 함께 함성을 지르며, AI 창작물의 권리 귀속 논란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협회는 “문화 예술 현장의 실제 창작자들과 폭넓은 논의를 거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 소식은 AI음악이 우리의 감각과 법, 그리고 예술적 경계에 던진 치열한 질문이다.
초여름 들판, 상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자리에서, AI는 인간의 감성을 대신해 피아노를 누르고 가사를 읊조린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닐지도 모를’ 목소리. 이 전율의 파장은 예술가의 권리와 청중의 취향을 동시에 흔든다. 이 방침은 거대한 ‘융합’의 서막을 예고한 듯하지만, 실상 그 심연엔 음악계 전반의 불안과 경계, 그리고 미지의 설렘이 교차한다. 저작권 등록이란 땅을 놓고 펼쳐진 이번 논의는, 과연 창작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AI가 그린 그림도 예술일까?”, “AI가 쓴 소설도 문학일까?”라는 물음이 이제는 “AI가 만든 음악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가?”로 바뀌었다. 국내외 저작권 기준은 아직도 그 ‘창작주체’의 경계를 두툼하게 쌓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조차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유럽 일부 국가에선 인간 창작의 최소한의 개입이 증명되면 일부 인증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저작권법 제4조가 ‘인간의 창작물’로 경계를 긋고 있어 혼재와 혼돈, 그리고 새물결의 동요가 가득하다.
음저협이 초유의 AI음악 저작권 등록 방침을 내놨다가 철회한 배경엔, 음악계 현장의 현실적 반발과 창작자 공동체의 불안이 충돌한다. 수십 년간 ‘가사 한 줄, 멜로디 한 마디’에 삶을 건 작곡가, 작사가들에게 AI는 도전이자 위협이다. 일부 창작자들은 AI가 만들어 낸 음악이 제 이름으로 세상에 등록된다면, 기계가 ‘감동’을 실어 나를 수 있냐며 회의적인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반면, 신진 세대와 IT업계는 “창작 보조로서 AI를 활용하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고 기대에 가득 차 있다. 빛과 어둠이 엇갈린다.
산업계는 당혹과 갈등, 법조계는 심각한 고민, 예술계는 존재론적 흔들림을 맛본다. 저작권은 경제적 보상일 뿐 아니라, 창작자의 이름을 역사 위에 올리는 의식과도 같다. AI가 언제나 인간의 영감을 옆에 두고 따라야 할지, 아니면 전이와 모방,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대상을 넓혀야 할지 한국 음악계는 무거운 질문을 받아 안는다. 누군가는 AI음악의 파급력이 신진 아티스트의 입지를 좁힐 것이라고 걱정하고, 다른 한편에선 반복되는 코드, 상업적 공식에 AI가 신선함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몇몇 글로벌 음원 플랫폼은 이미 AI뮤직이 ‘취향 맞춤 사운드트랙’을 자동 생성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간이 만든 음악’이라는 레이블이 역설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얻게 될 미래를 상상한다. 디지털 바다 위, 창작과 소비, 그리고 소유의 기준이 해체되고 있다. “감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외침과, “예술의 혼은 결국 인간이 만든다”는 신념이 한국 문화계 곳곳에 부딪힌다.
이 수면 아래에서는 AI와 인간의 협업, 아티스트와 기술자가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손을 맞잡는 움직임이 자라나고 있다. 창작의 의미는 정지해 있지 않다. 어떤 음악은 사랑의 아픔을, 어떤 노래는 이별의 환희를 이야기한다. 그 서사에 AI가 합류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감정을 나누게 될까. ‘AI 활용 음악’ 저작권 등록의 논란은, 단순한 법적 결정이 아니라 우리 음악, 더 나아가 감정과 문화의 미래를 함께 묻는 슬픈 사랑노래와도 같다.
다시, 음악은 ‘소유’가 아니라 ‘공명’이어야 하지 않을까. 창작자의 권리와 청중의 권리, 그리고 기술의 순기능 사이—음악 산업은 지금 위태로운 외줄 위에 서 있다. 섣부른 등록과 폐쇄적인 배제 모두 우리에게 긴 생각거리를 남긴다. 바야흐로 AI와 문화의 경계, 그 흐릿한 광야에서 인간 고유의 떨림이 다시 한 번 길을 찾고 있다.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