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도 모르고 재판하는 판사에 막말하는 판사까지 있어요”

대한민국 법정, 그 신성한 공간에서 최근 들어‘판사’라는 직업의 권위가 위험경보를 맞고 있다. 한창 재판을 기다리던 김모(42·가명) 씨는 지난달 형사법정에서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했다. 당연히 판사는 관련 기록을 철저히 읽고 오리라 믿었다. 그런데 방청석에 앉아 재판 과정을 지켜보니, 판사가 사건의 쟁점은커녕 피고인 이름조차 헷갈리면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 씨의 고백대로라면 그날 법정은 ‘사람’이 아닌 ‘형식’이 주도했다. 판사는 꾸벅 졸기도 하고, 검사가 진술을 하고 있는데 ‘뭘 했다고요? 잘 모르겠는데요’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법정에 선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고, 피해자이거나 피고인이거나 가족들이라면 얼마나 불안했을지, 장면 하나하나가 아득하다.

판사 막말 논란이 이어진다. 피고인의 답변을 두 번 되풀이하게 한 뒤 ‘이 정도도 못 알아들으냐’ 탓을 한다든가, ‘시간 아까우니까 빨리 합시다’같은 명분 없는 재촉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실무수습 변호사였던 채 모 씨의 사례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판사의 무례와 피상적 재판진행에 상처 입은 채 씨는 “사건을 모르는 채 결과만 재촉하는 판사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토로했다. 오랜 시간 법정 내 위계에 눌려온 피해 당사자와 변호사들, 또 재판을 지켜보는 국민 입장 모두 깊은 불신만이 남는다.

판사의 권위는 왜 이렇게 실추됐을까. 그 답은 ‘사람에 대한 공감력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현직 판사는 “사건이 많고 기록은 너무나 방대해 하루에 10건 넘는 재판을 돌리는 날도 많다.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분명 우리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원인이다. 하지만, 법대 졸업의 엘리트 코스만으로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귀’를 보장하기 힘들다. 피해자가, 혹은 피고인이 어떤 마음으로 재판정에 서는지, 가족들이 몇날 며칠 초조에 시달리는지에 대한 감정의 파악과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법정은 오직 ‘틀에 박힌 절차’일 뿐, 결코 국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몇 년간 질책성 언행, 무시, 막말 수준의 대응이 여러 법정 목격담을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신뢰는 더욱 바닥을 쳤다. “이게 재판이냐”라는 냉소적인 외침이 반복된다. 실제 2025년 대법원 국감 자료에서도 ‘심각한 업무 과중’과 ‘피상적 재판진행’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판사 숫자를 늘릴 수도, 소송을 반으로 줄일 수도 없다. 그러나 국민 누구도 법정에서 상처받아선 안 된다. 벼랑 끝에서 울분을 삼키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법복 너머 사람의 삶을 직시할 줄 아는 판사야말로 이 시대 사법의 첫걸음이다.

행정처의 반론도 있었다. “판사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이 부풀려진 것”이라는 취지다. 물론 재판관도 인간이다. 하지만 잦은 실수, 경솔한 말 한마디가 사건 당사자 인생을 흔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판사 인성 교육’과 ‘법정 내 커뮤니케이션 훈련’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사법 선진국은 재판관의 배경 다양화와 ‘피해자 친화형’ 재판훈련을 유의미하게 도입 중이고, 이를 시민이 상시 감시·피드백하는 체계도 갖췄다. 우리 사법부 역시 판사의 ‘자기 인식’과 ‘공감 능력’ 향상을 위한 제도적 논의가 시급하다.

한 중견 변호사는 “어차피, 승소만 따지는 사람들과, 법의 장벽 뒤에 선 판사가 제일 위험하다”는 말을 남겼다. 법정에서 최우선되어야 할 것은 ‘권위’나 ‘속도’, ‘양적 처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건’을 대하는 정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문 모를 막말, 형식주의, 그리고 공감력 없는 절차가 반복된다면, 법정에 선 그 누구도 결코 법치주의의 혜택을 경험하지 못한다. 현실의 법정에서 우리가 더 많이 물어야 할 질문은 “지금 저 사람이, 저 눈물이, 판사님 마음에 얼마나 닿았을까”가 아닐까. ‘법은 사람의 일’임을 망각하지 않는 사법, 오늘도 그 한 걸음을 기다린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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