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지성의 심장을 훔친 기술 – 한강과 앤 카슨, 그리고 AI의 그림자

기억의 깊은 밤에서 한 줄의 문장이 태어난다. 그 문장은 온전히 인간의 고통과 사랑, 꿈과 절망을 담고 있다. 2026년 가을 한국 문학계에 충격을 던진 소식은 바로 그 문장, 그 영혼마저 점유하려는 기술의 손길이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써 세계가 주목한 한강, 그리고 시의 신화를 새로 쓴 앤 카슨. 이 두 작가의 숨결이, 정확히는 그들이 창조한 작품의 방대한 텍스트가 AI 학습용 데이터라는 이름 아래 앤트로픽(Anthropic) 등에 의해 무단 다운로드 되었음이 밝혀졌다. 창작자와 독자,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남은 것은 이렇게 묘한 공포와 허탈함이다. 우린 누구의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일련의 사건은 한 편의 시보다 더 서늘했다. AI 시대, 예술은 데이터를 갈구하는 ‘기계’의 밥이 되어버렸고, 창작물의 권리는 코드와 알고리즘 저편에서 사라졌다. 이른 아침, 컴퓨터 스크린에 흩어진 글자들은 더 이상 저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앤 카슨의 ‘레드 독스’와 같은 세계문학의 정수까지도, 데이터 수집이라는 미명 아래 너무나 쉽게 기계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따뜻함과 아릿함, 문학적 감정들이 소리 없이 흡수되는 순간,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

예술가의 문장은 견딜 수 없는 내면의 떨림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복제, 분석되어 낯선 창작품의 뒷그림자가 된다면? 작가의 통제 밖에 생성되는 새로운 문장들, 그것을 ‘표절’이 아니라고 말할 근거는 무엇일까. 법적 구분과 기술적 분석, 그 너머의 ‘마음’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전문가들은 AI 산업 발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은히 사라지는 ‘작가의 권리’나 ‘예술의 존엄’은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저작권’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소송이 오가고 있다. AI의 학습에 쓰기 위해 문학작품, 사진, 그림, 음악 등이 무단 수집된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창작자들은 자신이 스스로 쓴 언어와 이미지가 오히려 자신을 배제한 AI 엔진의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따끔하게 느낀다. 앤트로픽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픈AI, 구글 등 전세계 주요 AI기업들은 비슷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국내 출판계는 물론, 전세계 문학계 역시 점점 뚜렷해지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현행 저작권법의 한계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작가에게 실질적인 보상이나, 동의–거절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기술은 ‘논리’와 ‘효율’을 좇아 질주하지만, 예술은 ‘아픈 눈물’을 빚는다. 창작자의 온기가 사라진 AI의 언어는 어쩌면 영혼 없는 울림일 수밖에 없다. AI는 인간의 기억을 베끼려 하지만, 정확히 그 기억을 만든 감정과 손끝의 떨림까지 유전할 수는 없다. 한강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서사, 앤 카슨이 언어 너머에 숨겨둔 상징의 숲, 그 미세한 결은 어느 AI도 흉내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학습’이라는 이름의 강물이 말없이 들어온다.

대량의 문학 데이터가 AI로 흡수되는 이 시대. 우리는 묻는다. 미래의 독자는, 그저 효율적으로 구조화된 요약문을 읽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작가라는 존재, 예술의 신성함은 ‘데이터’라는 말 아래 분해되고 사라질 것인가? 혹은 새로운 창작의 도구로 공존할 것인가. 이미 거대한 산업은 움직이고 있다. AI가 쏟아내는 소설과 시, 번역—그 중심에서 소리 없는 강탈이 계속되고 있고, 한 줄의 시는 견딜 힘조차 잃어가고 있다. “누군가 당신의 영혼을 베끼려 할 때, 당신은 무엇으로 저항할 것인가?” 잔잔한 묵직함을 남기는 질문이다.

AI로 대표되는 거대 자본, 기술, 오만한 효율의 시대. 그리고 한 사람의 언어에 기댄 수많은 밤,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곡선. 카피와 창작의 경계에서 우리는, 아직 명확히 답하지 못한 질문 앞에 서 있다. 누구의 언어가 진짜이며, 누구의 삶이 데이터에 불과한가. 결국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고통과 기쁨을 지켜내는 마지막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챗봇과 자동번역이 아무리 정교해질지라도, 작가의 진짜 목소리에는 늘 삶이 담겨 있다. 생기는 고통과 슬픔, 희끗한 빛까지도. 이것이 바로 예술, 그 자체가 아닐까.

언젠가, 더 깊은 밤이 오더라도 우리는 인간만이 가진 그 빛나는 서사의 힘을 끝끝내 믿고 싶은 것이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