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의 산문집, ‘사소한 부탁’은 현대시인이자 비평가로서 살아온 그의 마지막 시대적 기록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 풍경을 다정하고 깊게 어루만진다. 문화 전반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 그리고 철저히 사람을 향한 문장의 온도는 그의 모든 글을 관통해온 고유한 서명이다. 2018년 떠난 황현산의 유작을 묶는 이 책은, 작가가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세상을 향해 던진 작은 질문과 부탁,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책은 시인으로서의 내공과 에세이스트적 관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짧은 글귀, 느낌표 없는 온화한 언어, 복잡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거리 등이 인상 깊다. 작가는 사회적 소란과 개인의 외로움, 우리 모두의 일상 속 작은 슬픔과 기쁨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일상적인 사물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문장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고전적 사유의 힘을 전한다. 그는 자신의 병상에서도 삶과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놓지 않았다. 인간다운 삶, 고통마저도 품으려는 태도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진귀함이다.
황현산 산문의 힘은 사람을 중심에 둔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는 시인, 평론가, 에디터, 번역가로 활동하며 문단과 사회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공동체 내에서 우리가 서로의 삶에 어떻게 사소한 ‘부탁’을 건넬 수 있는지, 그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특별한 미사여구 없이 담아낸다. 작품 곳곳에서 세상을 즉각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라는 자문이 독자에게 잔잔히 번진다.
글마다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인물의 내력이 비교적 자세하게 드러난다. 노년, 병, 가족사 등 삶의 사태마다 붙들었던 정직한 태도가 보인다. 황현산은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곧장 독자와 세상에 말을 건넨다. 나아가 각 글 중간중간 외롭고 아픈 이들, 온정이 필요한 평범한 이웃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그의 글에서는 늘 한 걸음 느리고 조용히, 타인의 슬픔을 보듬는 마음이 번진다. 이는 임상적이거나 구조적인 분석에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누구’와 ‘어떤 사연’을 껴안고, 많은 순간에서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배려와 위로의 목소리는 미묘한 울림을 준다.
특히 황현산은 개인사를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으나, 결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사소한 부탁처럼 보일지언정, 이를 통해 묻는 질문에는 사회 전체를 향한 공공의 고민이 배어 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 작가들과의 관계, 그리고 문학계 전반의 변화에 대한 관찰에 이르기까지 그의 안목은 넓고 깊다. 생의 끝에서, 혹은 일상의 중심에서 남긴 촌철살인은 우리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곱씹게 만든다.
동료 평론가, 후배 시인들 또한 황현산의 산문이 주는 울림을 증언한다. 같은 시기 출간된 에세이들과 비교해도, <사소한 부탁>의 인간적 존엄과 정직, 사유의 깊이는 특별하다. 최근 사회적으로 강조되는 ‘관계와 돌봄’, ‘사소한 연대’라는 키워드를 문학적으로 증명해낸다. 그는 이 타이틀답게, 작은 일에 애틋함을 느끼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 굳은 진심을 건넸다. 병상에 몸을 누인 채로도 계속 글을 써내려간 그의 모습은, 예술과 삶, 그리고 사랑을 잃지 않는 태도를 이 시대가 본받아야 함을 말없이 보여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선한 시선으로 서로를 다시 바라볼 용기를 얻는다. 한 개인의 기록에서 시작하지만, 곧 다양한 세대와 계층, 지역을 아우르는 공감과 사유가 이어진다. 평범한 일상, 작고 여린 부탁, 잊혀진 감정의 흔적에서 우리는 우리의 잊힌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무엇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지, 무엇을 놓치면 더이상 삶이라 할 수 없는지, 황현산은 합리화나 미화가 아닌 본래의 감정과 깨달음 그대로 물어온다.
세상이 소란스러운 지금, 우리는 때때로 ‘사소한 부탁’을 주고받을 여유조차 잊고 지낸다. 하지만 황현산의 산문을 통해, 누군가의 부드러운 한마디, 작은 응답이 얼마나 큰 온정과 위로가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문학의 역할, 시민의 역할, 그리고 사람됨의 근본을 다시 묻는 이 산문집은 바쁜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머물고 싶은 조용한 휴식처가 될 것이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와…진짜 이런 책은 누군가는 꼭 썼어야함!!👍 읽다가 울컥했어요ㅠㅠ
사소한 부탁인데… 내 통장에 0 하나만 더 붙여주실 분 ㅋㅋ 이런 진심 부탁 아무도 안 받아줌🤔
내가 직접 읽어보고 평해주마 이렇게 조용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 좋긴 해. 요새는 사람냄새 안 나는 책들 많아서 아쉬웠음.
자기 삶의 무게를 이렇게 담담하고 따뜻하게 기록한다는 게 쉽지 않죠… 특히 우리 사회처럼 빠르고 팍팍한 곳에선 더더욱… 황현산 시인 평소에도 존경했지만 이번 산문집에서 삶의 초점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네요. 모두들 잠시 멈춰 서서 주변 한 번 더 돌아보길…
읽다보면 마음에 촉촉한 감정이 퍼져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