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도 못했던 30년 한 풀었다’…김상식, 베트남 축구 역사의 금자탑 쌓다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베트남 축구의 해묵은 벽. 30년간 인도네시아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웃지 못했던 그 아픈 역사를, 김상식 감독이 마침내 멋지게 허물었다. 2026년 8월 5일, 베트남 대표팀은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인도네시아와의 월드컵 2차 예선 원정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단순한 승점 3점이 아니다. 1996년 이후 30년간 고개 숙였던 인도네시아 원정 징크스를 완벽히 깬, 베트남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이다.
이번 승리에는 숫자로도, 내용으로도 두드러진 변화가 뒤따랐다. 김상식 감독 부임 후 21경기 무패(16승 5무), 즉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무적군단으로 변모한 베트남 대표팀의 퍼포먼스는 명백히 다른 차원이었다. 현지 분위기와 상대 몰이에 휩쓸린 과거와 달리, 베트남은 이날도 단단한 조직력과 냉철한 경기 운영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전반 14분 르 응옥 투안의 선제골은 다이렉트 패스와 세컨드볼 공략의 교본이었다. 후반 63분 르 또안 빈의 쐐기골은 트랜지션 포메이션의 위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 김 감독의 전술은 과감한 압박과 후방 빌드업, 그리고 공간 침투의 무게 중심 이동까지 완벽하게 살아났다.
전술적으로 김상식 감독은 ‘폴스9’와 ‘더블 볼란치’, 그리고 측면 풀백의 오버래핑을 이중으로 결합한 4-2-3-1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인도네시아의 좁은 지역 압박에 맞서 끈적이고 유연한 빌드업으로 전환하면서, 전방 선수 단 한 명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여러 갈래의 공격 전개를 반복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베트남이 수비 시 4-4-2로 전환하여 상대 공격수의 볼 접근을 조기에 차단하고, 공격 시엔 3-4-3 변형으로 측면을 활발히 이용했다는 점이다.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 또한 달랐다. 주전 미드필더 응우옌 휘황남이 박스 투 박스로 왕성히 움직이고, 수비라인에서는 부이 티엔중이 인도네시아의 에이스를 맨투맨처럼 따라붙는 장면에서 김 감독의 디테일한 마킹 오더가 읽힌다.
이 지점에서 ‘박항서 효과’와의 비교는 명확해진다. 박항서 전 감독 재임 시기(2017~2022) 베트남은 확실한 수비 조직과 강한 압박, 빠른 역습으로 동남아 정상에 우뚝 섰지만, 원정에서는 심리적 약세와 패턴화된 공격 방식의 한계에 종종 갇혔다. 반면 김상식 감독은 기본기는 지키되, 지속적으로 전술적 실험과 세대교체를 밀어붙였다. 단적인 예가 유연한 라인업 운용이다. 이번 인도네시아전에도 3명의 신예 선수를 과감히 기용해, 상대가 전혀 대비 못한 움직임으로 주도권을 빼앗았다. 상대 팀 감독 토마스 바흐만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예상치 못한 변칙 전술에 당했다”고 할 정도였다.
베트남 현지 반응 역시 뜨겁다. 표면적으로는 월드컵 예선 승점 확보지만, 내면에는 “새로운 축구 문화의 탄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김 감독 체제 이후 베트남 대표팀이 동남아를 넘어 아시아 중상위권까지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데이터가 이를 방증한다. 베트남은 최근 6개월 공인 A매치에서 슈팅, 볼점유, 패스 성공률 부문에서 모두 최상위권에 들었다. 박항서 시절 압박-역습 일변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로 한 단계 진화한 셈이다. 야전사령관 김상식의 리더십, 선수단의 전술수용성, 그리고 베트남 축구협회의 적극적 투자 등 모든 전선을 최전방에서 밀고 나가는 돌파력이 빛났다.
하지만 이 승리가 단순한 기록 경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21경기 무패 행진, 30년 만의 숙명의 적 인도네시아 원정 승리. 이것은 아시아 축구 축에서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는 ‘성장 곡선’이다. 베트남 축구가 이제 동남아 권위를 넘어, 아시아 톱티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신호탄. 앞으로 김상식호가 보여줄 스쿼드 조합, 전술적 유연성, 그리고 국제 경쟁력을 동남아 이웃국가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목하게 됐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승부사답게 새로운 길을 개척한 김상식 감독과 베트남 대표팀. 30년 한을 풀고, 21경기 무패라는 철의 행진을 이어가는 행보는 동남아는 물론, K리그 출신 감독의 지도력, 나아가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까지 새롭게 조명하게 만든 사건이다. 이 역사적 쾌거는 단순히 ‘승리’의 의미가 아니라, 버거웠던 과거를 재료삼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한시도 미련이 없는 축구의 현재진행형 진화임이 분명하다.
김태영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