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걷는 ‘74세 박정수’가 선물한 용기…노년의 걷기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나이 들어 못 걸으면 안 돼.” 이 한마디에는 인생 후반전의 절박함과 희망이 동시에 녹아 있다. 박정수 씨(74), 그가 동네 공원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지난여름 어느 무더운 오후에도 변함없었다. 지금 이 시각, 전국의 수많은 노인들도 아침 저녁으로 아파트 단지를, 집 앞 산책로를 묵묵히 걸으며 늙어가는 몸에 맞서고 있다. 걷는다는 평범한 행동이 특별해지는 나이. 관절에 찾아온 잦은 통증, 무릎 주변이 뭉클한 날은 마치 세상이 내 몸을 몰라주는 것 같다고 박정수 씨는 말했다. 그렇기에,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걷는 습관”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가족들도 처음엔 말렸지만, 오히려 박 씨는 낡은 운동화에 고무 밴드까지 동원해 자신만의 걸음 걷기를 지켰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노년 건강 보행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은 걷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만성질환, 근육 약화, 사회적 고립이 주요 원인으로, 일상에서 통증이나 불안을 이유로 걷기를 멀리 한다. 사례를 모은 취재와 학계 논문을 더해보면, 노인 걷기 실천 가장 큰 장벽은 가족의 지나친 걱정, 이미 손상된 무릎, 그리고 ‘지금 시작해도 이미 늦은 거 아닐까’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박정수 씨는 달랐다. “어머니 세대가 경험한 부상과 병치레를 보고 느꼈죠. 계속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으면 금세 약해지더라고요.” 아침마다 자신과 약속을 한다는 박 씨. 그 약속은 ‘걸으며 사는 삶’을 위한 작고 강인한 헌신의 결과물이다. 동네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건강 보행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참여한다. 의사들이 권하는 스트레칭, 평지와 잔디밭 번갈아 걷기, 미끄럽지 않은 신발 신기—박정수 씨는 수첩에 주요 포인트를 직접 그려 넣는다. 중앙노인복지연구소 박성우 박사는 “70대 이후에도 매일 30분씩 걷는 군노인이 허리뼈·대퇴골 골절 위험이 크게 줄고, 전체 수명과 삶의 질도 의미 있게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실제 현장 전문가들은 혼자 집에만 있으면 하체 근력과 균형 감각이 급격히 쇠약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자립’의 핵심이다. 특히 고령화 사회 진입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도 커졌다. 서울시와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은 실내 워킹교실, 저강도 실버요가, 계단 걷기 등 다양하게 실천법을 안내한다. 박정수 씨가 직접 실천하는 강화 운동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집안에서 잡은 의자나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는 ‘스쿼트’, TV를 보며 천천히 발끝 들기, 가까운 시장까지는 대중교통 대신 걷기. 점점 느려지는 속도를 조급해하지 않고, 때론 멈춰서 숨 고르는 법도 익혔다. 한겨울 빙판길에는 외출 대신 실내 산책로 이용, 쉬는 날엔 근처 체육센터에서 가벼운 기구 운동을 추가한다. 그는 “젊었을 땐 몰랐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게 하는 선물”이라며 오히려 환하게 웃는다. 건강 걷기의 비결은 결국 사람 곁에 있었다. 외로움은 가장 무서운 적. 동네 친구들과 일정 시간을 정해 함께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견디는 힘도 커진다. 몇몇 연구논문에서도 사회적 관계망이 노년 걷기 실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최근 한 방송에서는 85세 어르신이 이웃과 함께 등산로를 걸으며 던진 말이 화제가 됐다—“오늘만큼은 나이가 아니라, 내 두 다리로 하루를 만드는 거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저소득층 노인, 장애를 가진 어르신들은 걷기 시작조차 쉽지 않다. 사회적 안전망과 의료 접근성 확대, 각 지방자치단체의 맞춤형 건강 지원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박정수 씨 또한 “혼자 살면서 겪는 불안이 가장 큰 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보행기라도 빌려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조심스레 밝혔다. 밤이 길어진 여름 끝자락,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다시금 마음이 뜨거워진다. 박정수 씨를 포함한 모든 어르신들의 느린 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걷기란 단순한 심신운동, 그 이상이다. 일상 속 건강을, 삶의 의미를, 그리고 서로를 잇는 가장 꾸준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이 걷기로 이어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단단해진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오늘 하루 ‘천천히, 함께 걸어보자’고 먼저 말을 건네고 싶다— 그 마음 안에 건강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