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직접 해먹을래요”…글로벌 출판계 사로잡은 ‘K-레시피북’
인적이 드물던 초여름 새벽, 한국의 한적한 부엌에서 불이 밝게 켜진다. 불 위에는 갓 손질한 채소가 달그락거리고, 가벼운 참기름 내음이 방 안 가득 퍼진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작은 떨림, 서랍 한켠에서 꺼내드는 낡은 나무숟가락의 감촉까지. 요즘, 이러한 따스한 순간이 세계 곳곳의 부엌에서도 느껴진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 세계인이 직접 한식을 만들어보고자 각국 서점에서 K-레시피북을 찾는다. 한식의 맛과 손맛, 그리고 이에 담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들의 열기가 오롯이 책장마다 번지고 있다.
지금 한국 요리책은 전례없는 글로벌 성공을 누리고 있다. K-푸드의 유행은 더이상 배달 앱이나 유튜브 ASMR 영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뉴욕타임스·로이터 등 여러 해외 매체는 한국 레시피북의 출간 소식과 베스트셀러 진입 소식까지 연이어 전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아마존에서는 ‘Korean homecooking’이라는 키워드가 연일 상위권을 차지한다. 한식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인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전에는 비빔밥, 불고기, 김치전과 같은 대표 메뉴만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제는 집밥에 가까운 간장계란밥, 묵은지찌개, 깻잎찜 등 ‘소박한 한 그릇’ 이야기에도 마음을 연다.
이처럼 세계인의 눈길을 받는 K-레시피북은 무엇이 다를까. 우선, 사진 한 장 한 장이 단지 음식의 비주얼만 좋아서가 아니다. 실제로 한식 레시피북을 펼치면 오랜 전통과 가족의 기억, 지역의 사연, 나만의 맛에 대한 고집 등이 잔잔하게 흐른다. 긴 조리 과정의 디테일을 포착하듯 자연광 아래 놓인 잡채의 투명함, 김치 썰어내는 소리, 불 위에서 팔팔 끓는 찌개의 분주함, 그리고 창문 밖 낡은 골목길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까지. 독자들은 단순히 요리 방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품고 있는 바깥의 계절과 오랜 시간을 함께 읽는다.
글로벌 출판계가 K-레시피북에 환호하는 데에는, 책마다 녹아 있는 이야깃거리도 한몫한다. 단지 맛있는 레시피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넘어, 각 요리마다 따르는 가족의 사연이나 기원, 혹은 한 모퉁이에 놓인 밥상의 추억까지 사진과 에세이 형식으로 잘 엮어낸다. 그래서일까, 이 책들은 주방 한구석의 손때 묻은 냄비와 그릇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이웃집 엄마도 이런 방울토마토조림을 해줬을까?’ 같은 작은 궁금증마저 생기게 만든다.
아울러 세계인의 한식 경험 방식도 깊어졌다. 유튜브 속 빛나는 이미지 대신, 서점에서 레시피북을 사 모으는 이들은 이제 ‘진짜 한식’의 미감과 치유를 원한다. 먹방 열풍을 품었던 K-콘텐츠의 흐름이 실질적으로 부엌을 채우는 한 접시로, 그리고 ‘만드는 즐거움’으로 이동한다.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 유럽 각지에서 한국 요리책 번역판이 날개돋친 듯 팔리는 현상은 커다란 문화적 변화이기도 하다. 뉴요커들이 김치 샌드위치 레시피를 묻고, 파리의 작은 바리스타가 청국장찌개 레시피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습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다. 한 때 ‘이색적’으로만 소비되던 한식은, 직접 다루고 싶은 ‘일상’의 메뉴가 되었다.
비단 음식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식 레시피북이 주는 분위기, 공간, 그리고 조리의 시간성이 책 한 권에 감각적으로 녹아 있다. 실제로 서울의 오래된 찻집, 작은 주택의 부엌, 그리고 나무 테이블 위에서 펼쳐지는 먹음직스런 음식 사진들은 종종 하늘빛, 문밖 풍경, 촉촉한 방울 등 감정을 자극하는 디테일로 확장된다. 책 속 레시피를 따라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독자들은 자연스레 옛 친구와의 추억, 할머니의 다정한 손길, 고요함이 흐르는 식사시간을 오래도록 곱씹는다. 가볍게 넘기는 한 장에도, 마치 작은 시처럼 공간의 향과 온기를 담는 한국 레시피북만의 문학성이 흐른다.
한식의 진짜 매력은 요리사의 손끝이 아니라, 식탁 주위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이의 마음에 있다는 말이 맞다. 레시피북은 이러한 진실을 소리 없이 설득한다. 가장 투박하거나 흔하다고 여겨진 음식이,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향기로운 추억임을 담백하게 일깨운다. 짧은 글귀, 시선이 닿는 작은 접시, 고민 끝에 고른 장맛 하나까지. 출판계에서 K-레시피북이 사랑받는 건 결국 한식이 집밥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급적 오늘 저녁, 마음이 자꾸 쓸쓸하거나 낯선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면, K-레시피북 한 권을 펼쳐보길. 곁에 있는 사람과 오늘도 한 상을 차려 보고 싶어진다. 바쁜 도시도, 먼 타국의 부엌도 결국 이 한 끼 식사 앞에 온기와 기억으로 이어지는 것만 같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