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처럼, 삶의 끝에서 내린 선택 ― 연명의료결정제에 대한 현장의 기록

2026년 8월, 한 중년 남성이 부산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어머니와 마지막 밤을 보내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어머니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스스로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이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 절차를 밟았다고 전했다. 이 가족의 선택은 현장 의료진과 복지 담당자, 그리고 제도 속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연명의료결정제 시행 9년차를 맞은 한국 사회에선 임종 과정의 자기결정권 논의가 조용히, 하지만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다. 환자, 가족, 의사 모두에게 예전엔 낯설었던 이 제도는 점점 다양한 현실적 딜레마와 감정, 실천 과제들을 던지고 있다.

560만 명. 2026년 기준 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다. 완화의료와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영양공급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말기환자 보호와 의료현장 윤리 사이에서 찬반 갈등, 현장의 혼란이 반복됐다. 의료진은 반복된 현장 경험을 통해 서서히 제도에 적응했지만, 환자와 가족의 표정엔 여전히 ‘불안’과 ‘결정의 무게’가 실린다. 필요한 서류, 가족 동의, 의학적 소견 절차는 살아 있는 사람 모두가 ‘마지막을 준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묵직하다.

부산 사례의 어머니는, 자신의 마지막을 ‘동백꽃 지듯’ 맞이하길 원했고, 아들은 법적으로 관련된 모든 동의와 확인서를 준비했다. 진료기록과 상담 내역, 직접 작성한 사전의향서는 서랍과 침대 머리맡에 나란히 놓였고, 담당 의사는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에게 “이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는 설명을 차분히 반복했다. 선택은 가족 모두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인을 남겼고, 환자는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장에서 만난 의료진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남아 있는 가족의 상실감은 의료현실 어디에도 명확한 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25~2026년 들어 자기결정에 근거한 연명의료 중단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등록 건수가 전년 대비 약 11% 늘었다고 밝혔다. 동시에, 여전히 ‘무의미한 연명’과 ‘의료 방치’를 혼동하는 목소리도 있다. 의료현장 관계자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 ‘삶의 끝’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현장에 혼란이 잦다”고 토로했다. 정서적 어려움과 행정 절차 간극, 문화적 이질감은 실질적인 자기결정권 실현에 장벽으로 남는다. 삶의 의미와 죽음의 존엄을 둘러싼 질문은 가족 간 갈등, 의료진의 심리적 부담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변화도 감지된다. 60대 이상 고령자뿐 아니라 내과적·외과적 치료 중 만성질환 환자, 중증 장애인, 40대 가족단위 연명의료계획 상담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사전의향서 상담기관, 사회복지센터가 지역별로 확대됐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개선 TF를 꾸려 실무혼선, 개인정보 보호 문제, 시한부 진단 기준 완화 등 세부조항 개선에 착수했다. 현장 사회복지사는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임종 전 의사결정을 상의하는 문화가 아직은 낯설다”면서도 “상담과 지원이 늘어 실제로 제도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림프종으로 투병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한 한 환자 가족은 “부모님의 의지가 존중받은 건 다행이지만, 막상 마지막 날이 오면 무력감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털어놓았다. 의사결정의 순간 정신적, 실질적 부담이 현장의 또 다른 과제가 된다. 제도가 완전히 정착되기 위해선 법적 절차의 단순화, 상담기관 인력 확충, 가족 심리지원 등 후속 조치가 절실하다.

존엄사와 연명의료 결정은 이제 더 이상 일부 중환자실, 말기환자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다양한 병상, 질환, 가족구성 형태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법’에 대한 고민이 보편적 담론이 되고 있다. 현장에선 생명의 연장도, 생의 마무리도 모두 치열한 선택임을 목격한다. 환자 스스로 남긴 한 마디, “나는 동백꽃처럼 지고 싶었다”는 말이 남겨진 가족, 의료진 모두에게 깊은 함의를 남긴다.

현실은 여전히 제도와 실천 간 간극이 크다. 하지만, 현장 곳곳에서 자기결정의 권리와 남은 이의 슬픔을 함께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이 제도가 온전히 자리 잡으려면 판례, 사회적 합의, 지역 현장 지원까지 모두 직시해야 한다. 사회 전체가 죽음의 방식 앞에서 존중과 담담함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현장은 오늘도 ‘동백꽃처럼’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족 곁에서 그 선택의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 이현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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