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의료소비 5개월 연속 2천억 돌파, 서울 집중의 명암
서울대병원 입구에 서 있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시랏 씨는 대기실에서 아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한국의 첨단 치료와 통역 서비스에 놀란 그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서울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2026년 8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환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대상 의료 소비가 5개월 연속 2,000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K-의료, 즉 한국 의료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요 회복과 함께 의료관광이 재점화하며 그 중심에 섰다.
하지만 축제의 현장엔 어김없이 그늘도 존재한다. 전체 외국인 환자의 87%가 서울에 몰리는 쏠림 현상은 지역 의료 생태계의 불균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올해 들어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환자들의 신규 유입이 눈에 띄지만, 이들 대부분도 강남의 대형 병원으로만 흘러간다. 대구에서 ‘의료관광 통역사’로 일하는 김경미 씨는 “지방선은 진료 수준과 다양한 언어·문화 서비스 측면에서 걸음마 단계”라고 했다. 국립대병원 한 임상 교수는 “지방병원도 외국인 유치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와 통합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작은 규모의 지방병원들은 인력과 장비, 통역, 행정지원 등 ‘토털 케어’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 질과 고객 경험에서 서울 주요 병원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환자들은 고가에 체류비와 의료비를 지불하면서도 대부분 서울 선택을 망설이지 않는다. 정용숙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위원은 “의료특구나 국비지원 사업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않는 한, 현재의 서울 쏠림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대전·부산·광주 등 주요 거점 지역조차 외국인 환자 비중이 전국의 3% 남짓에 머문다. 의료관광 시장이 ‘한정된 축제’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외국인 의료소비 증가는 단순한 경제효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 성형·피부 시술 등 미용 의료에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암, 심장병, 희귀질환 등 고난도 치료와 예방 관리 분야에서도 주목받는다. 치매 조기진단, 로봇 수술, 맞춤형 재활 등 대한민국 의료의 강점이 해외 환자와 가족들 삶의 질을 바꿔왔다. 몽골에서 지병을 앓던 아이의 아버지 바야르 씨는 “한국에는 ‘사람을 살리는 진심’이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꼼꼼한 진단과 외국인 지원센터의 소통, 동행 서비스 등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경험이 재방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모든 길이 꽃길은 아니다. 규모의 이점을 갖춘 대형병원들은 높아진 수익에 고무된 반면, 지역사회 의료 공백과 격차는 외려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명품 K-의료’라는 브랜드가 한정된 공간에만 집중될 경우, 한국 의료의 신뢰도와 지속 가능성에도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원석 고려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인 환자 유치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내국인 필수진료 수요 공급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조심스레 우려했다.
정부는 최근 의료관광 시장 확장과 균형 발전 대책을 꺼내 들었다. 인천, 강원 등지에 국제의료특구 조성, 지방 공공병원 역량 강화, ‘K-메디컬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요 사업들은 아직 제도 설계 단계이거나 일부 지자체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다. 기존 의료관광법과 인센티브 정책도 서울 대형병원 중심으로만 효과가 집중된다는 반성이 나온다. 무엇보다 의료진 확보와 언어장벽 극복, 다양한 문화적 수용성 등은 단시간에 해결하기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서울 외국인 전용 진료센터의 간호사 박선영 씨는 “병원에 오랜만에 가족 같은 환자들이 웃으며 인사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려면, 그 다리가 수도권만이 아닌 전국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 의료시스템이 환자와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 모두에게 균등한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자들이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토대를 다지는 데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K-의료의 가치는 수익을 넘어, 사람의 삶에 마지막 희망을 건네는 진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때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