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자랑이지요” 소설의 모티브가 된 ‘명인’
구도심의 창백한 불빛 아래에서도 군산은 늘 한 번 더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도시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문학의 무대 뒤안길로만 여기기 쉬운 이 작은 항구도시는, 역설적으로 그 단단한 일상성과 내력에서 무게감 있는 이야기들을 길러낸다. 최근 출간된 화제의 장편소설이 다시금 군산 땅의 인간적 면모, 그리고 자신의 삶을 소설 속 등장인물에 투영시킨 ‘명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있다. 지역민뿐 아니라 이방인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군산 이야기가 다시 언급되는 배경은 무엇인지, 또 우리 사회가 지금 이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에 따르면, 이번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공공연히 ‘군산의 자랑’으로 불려온 장인의 삶에서 출발한다. 지역 전통의 복원과 계승이 그의 손끝에서 이루어져 왔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혁신을 더해온 장인의 자세가 소설의 핵심 줄기를 이루었다는 평이다. 주목할 점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인물의 성공담 혹은 미화가 아니라, 도시의 사라져가는 역사와 공동체적 맥락 안에서 ‘명인’의 자리가 부각된다는 면에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수탈 구조 아래 성장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한동안 재생과 자부심 찾기 운동에 천착해왔다. ‘명인’으로 명명된 주인공 역시, 일본식 가옥 밀집지와 적산가옥의 그림자 속에서 지역성을 복원하려던 노력과 맞물려, 사회적 인정을 받은 사례다. 실제로 그는 오래된 수공예 기술을 지키고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스승이자 지역 청년들에게는 실질적 롤모델이었다고 기록된다. 책과 더불어 언론·단체·지자체가 이들의 삶을 주목하는 건, 급격한 표준화·상업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 냄새’와 ‘현장성’에 대한 갈증, 그리고 지리적 변방에 대한 문화적 위로를 동시에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 타지방(예컨대 대구, 여수, 통영 등)에서도 지역 인물을 테마로 한 문학적 해석이 유행하고 있는 흐름도 눈에 띈다. 다만 군산의 경우, 단순히 관광자원화의 일환이나 ‘낭만’ 팔이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지역 사회의 기억과 슬픔, 그리고 ‘오늘의 공동체’라는 맥락에서 이야기가 새롭게 다듬어진 점이 두드러진다. 실제 출판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소설 출간 소식을 계기로 도서관과 문화원, 독서모임 등에서 군산의 보존할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전한다.
이번 ‘명인’ 소설은 단지 한 인생의 성공을 기리는 전형적 르포르타주가 아니다. 오히려 그 삶에 스며든 고난과 긴장,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관계, 도시가 겪어온 변화의 물결까지 한데 엮어내며 독자들의 정체성 질문을 촉발시킨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과 전혀 다른 세대이자 지역사회의 기성 권위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오히려 ‘삶의 애착’이나 ‘노력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군산은 오늘도 대도시와의 격차, 지역경제 침체, 인구 감소 같은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만난 한 중년 독자는 “군산이 가진 진짜 자산은 기술이나 문화재보다, 서로의 진심에 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더 이상 풍요의 도시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수사(修辭)가 아니라, 옆집 명인의 땀과 따듯한 응원, 그리고 실패까지 품어주는 공동체의 품에서 회복의 해법을 찾으려는 태도다.
한편, 최근 몇 년 전국적으로 문화재 복원운동이나 지역 장인 되살리기 프로젝트가 힘을 얻는 중임에도, 꾸준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없으면 실효성은 금세 약해진다는 지적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단 한 권의 책이나 미담, 혹은 지자체 캠페인 하나로 지역의 착근과 성장까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군산 소설을 매개로 각종 지방자치 사업, 교육 프로그램, 청년 연계 프로젝트 등 실질적 연결고리가 실험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가장 큰 변화는 지역민 스스로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여운이 길다.
이제 소설의 명인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그리고 ‘우리 사회’ 속 수많은 작은 명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조명하면서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군산이라는 도시가 갖는 문학적·사회적 함의는 한 인물의 전설화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성 속에서 빛나는 공동체 연대의 감정, 그리고 사라지는 것에 보내는 슬픈 응원이자 미래에 대한 작지만 단단한 약속이 되어가고 있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