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데 이건 살래요” 우르르…MZ에 인기 폭발한 제품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책방의 공기가 달라졌다. 예전의 그 무겁고 조용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시끌벅적한 젊은 웃음과 깨알 같은 관심이 구석구석을 채운다. ‘책은 손에 잘 안 잡힌다’는 MZ세대가 이토록 열광하는 제품, 대체 무엇이기에? 실제로 최근 여러 서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아도, ‘책 같은 무언가’는 순간순간 불티가 난다. “책 안 읽는데 이건 살래요!”라는 외침 속에 담긴 이중의 의미, 바로 독서라는 액션이 아니라, 책의 물성을 탐닉하는 시대가 펼쳐졌다.

지금 서점 계산대 앞에서 가장 먼저 팔리는 건 에디션북, 굿즈, 그리고 다이어리 등 ‘책을 닮은 상품’들이다. 마치 아침 이슬을 머금은 새싹이 북적이는 도심 콘크리트 사이를 비집고 나오듯, 이들 제품이 세대의 감성 한가운데로 스며들고 있다. 책이라는 큰 숲에 달라 붙은 작은 이파리들이, 오히려 나무보다 선명하게 빛난다.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결핍이 있다. 소설과 시집, 혹은 잠시의 에세이마저도 ‘다 읽지 못할’거라는 자신 없는 선언. 그러나, 소재로 등장한 ‘책 같은 것들’은 책의 얼굴을 한 채, 실은 경험과 소속, 자기를 꾸미는 행위의 아이콘으로 세련되게 변모한다. 친구와의 만남에서 ‘인싸템’으로 등극한 스티커북, 시집 디자인의 포켓형 메모장…. 어느 순간 취향과 소속감을 증명하는 플래그 역할까지 맡으며, 개인의 미묘한 공명들을 사회에 내민다.

MZ세대의 마음 한 귀퉁이에는 늘 결핍이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책을 온전히 읽는 시간, 그 자체가 사치에 가깝다. 대신 ‘읽지 않음’의 죄책감을 새로운 소비 감각으로 돌린다. 책 대신 짧고 예쁜 노트를, 미니 포스터처럼 꾸밀 수 있는 에디션북을, SNS 피드에서 자랑할 만한 책냄새 나는 굿즈들을 고른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번에 나온 그 표지, 소장각!”부터 북토크 인증샷, 서점 데이트 후기까지 소소한 자랑과 후기가 넘실댄다.

현대의 책방은 더 이상 지식을 거래하는 공간만이 아니다. 브런치 같은 감성, 아름다운 표지에 끌려 들어가는 발걸음, 책장 한쪽에 걸려 스며드는 네온 사인처럼 감각적인 제안이 발길을 붙잡는다. 어쩌면 지금의 책방은 책의 종이 냄새와 잉크의 향미 사이, 타인의 이야기를 나의 소유로 물들이는 꿈을 파는 공간이 되었다. 비록 책의 본문은 숲속의 길처럼 빽빽하고 어지러울지 몰라도, 에디션북과 굿즈로 시작한 호기심은 어느새 마음 한 조각을 환히 밝힌다.

관련업계는 변화에 잽싸게 응답한다. 유명 출판사들은 이제 책의 첫인상에 목숨을 건다. 표지는 예술이고, 소재는 한정판이 되며, 굿즈와 연동한 기획 상품은 서점에 길게 줄을 선다. 도서가 매대 위에서 경쟁하는 건 이제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외관과 만듦새와 경험이다. 심지어 온라인 서점에선 책 소개보다 굿즈 구성 설명이 더 길다. 북 커버에 달린 작은 아트워크 하나, 나만의 에디션 스티커 한 장이 실은 완벽한 구매 결정 포인트다.

과연 이런 트렌드가 독서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일까? 여러 현장 전문가들은 오히려 “독서의 정의가 재설정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텍스트를 해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일상에서 책과 엮인 감수성 그 자체가 의미로 변주된다는 설명. 나만의 무드를 꾸미고, 서가 앞에 더 오래 머무르며, 친구들과 감상을 나누는 것. 그 전부가 바로 지금의 책 문화다.

물론, 시대의 변화는 늘 찬반이 교차한다. 누군가는 ‘책은 읽으라고 있는 거지’라며 툭 얘기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읽지 않아도 책을 좋아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제 MZ세대에게 책은 스스로의 세계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장식이자, 마음의 배경음이다. 발견하고, 고르고, 소장하며 자기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모든 과정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문화로 확장된다.

책을 읽지 않는 세대에 대한 걱정은 오래됐지만, 그 자리를 감성과 취향의 동굴로 채우는 이 새로운 물결은 결국 세대의 언어가 된다. 무거움을 가볍게, 전문성을 일상으로, 텍스트를 작은 착붙으로 환원하는 그 현장. 결국 책의 본질은 한 장의 종이 뿐만 아니라, 그 곁을 지나는 손길과 나만의 기억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MZ의 트렌드 속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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