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일상의 흔들림에 귀 기울이다

황현산의 문장은 뜨거운 점 하나 없는 커피처럼 담백하다.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흘려보내는, 사소하지만 결국 우리 마음을 붙잡는 그 작은 흔들림 같아서다. 고황이 시인이자 평론가로 살아온 그의 마지막 산문집 ‘사소한 부탁’은, 한 권을 다 펼치기도 전에 마치 오래된 동행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듯한 포근함에 젖는다. 낯익은 이름, 황현산. 우리에게는 ‘밤이 선생이다’ ‘말과 시간의 깊이’ 등,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늘 자기 고백적이면서도 숲 전체와 나무 각각의 자리를 아끼는 시선의 작가다.

그의 유작 ‘사소한 부탁’도 결국은 ‘자기 이야기’이면서 곧 ‘우리 이야기’이다. 이번 책은 유족인 부인 김정희 씨가 작고 이후 원고를 힘겹게 손질해 세상에 내놓았다. 이미 들려주고 떠난 목소리지만, 그 삶의 결이 고스란히 서술로 전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애써 힘주지 않고 스며드는 문장들이 포개진다. 이제는 직접 묻거나 되물어볼 수 없는 이에게, 우리 삶에서도 같은 종류의 사소한 부탁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다인의 눈에, 황현산의 일상은 늘 문학적 장치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는 두부를 먹으며 한 생명을 생각한다. 거실 한 구석의 볕을 쬐는 시간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길어낸다. 그저 살아내는 삶이 어떻게 문학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가,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삶 역시 이미 문학적임을 토로하게 만든다. 황현산의 산문은 ‘말로 다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한 애틋한 사유로, 한 문장 한 문장을 누군가의 손을 잡아끄는 듯 적어내린다.

김훈이 “황현산의 글은 눈 먼 돌멩이의 낙수처럼 마음에 스며든다” 했듯, 그의 산문은 현대의 분주함, 소란, 허무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고요한 저항’이 된다. 자신이 겪은 병상에서의 시간, 오래된 가족 사진 속 그리움, 그러나 곳곳에 보이는 쓸쓸함마저 따뜻하게 보듬는 삶의 태도. 그 품은 이별에 있지만, 삶에 거는 희망을 놓지 않는 작가만의 믿음이 ‘사소한 부탁’ 곳곳을 채운다. “손에 잡히는 의미가 아니라, 그 불투명함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고 한 그의 말은, 어느새 우리 삶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의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미뤄두었던 ‘사소한 부탁’ 하나쯤 생각하게 된다. 감사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한 채 떠난 이들과의 대화. 결국 그 ‘자잘한 부탁’들은 우리가 하루를 꾸려가는 데 꼭 필요한 안부이자, 남겨진 이들에는 계속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황현산은 사소함의 힘–우리가 잊고 지나치는 일상의 세부,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자 하지 않은 표정들– 속에서 문장과 삶 모두를 건져 올린다.

최근 서점가에는 자기계발, 사회비판, 트렌드 분석서들이 압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황현산의 책은 분명히 이들과 결이 다르다. 과장이나 구호 대신, 한 발짝 물러나 이 삶이 품은 물음표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2026년 K-문학 독서 지도에 다시 오르는 그의 이름. 이번 ‘사소한 부탁’은 한 시대를 통과한 지식인의 개인적 사유와 시대 너머의 공감을 오롯이 담아낸다. 비단 문학 애호가가 아니어도, 어딘가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 지금의 일상이 마냥 뾰족하고 고단하게만 느껴졌던 이에게 이 책은 마음의 구석을 환하게 비추는 손전등이 되어줄 것이다.

황현산을 읽는다는 건, 의미를 빚어내는 손끝의 고요한 떨림을 다시금 느끼는 일이다. “세상은 항상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그 한마디를 곱씹고 있노라면, 지금 내 옆의 사소한 순간도 언젠가는 ‘오남은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의 기억에 머문다는 진실에 찡해진다.

독서란, 외로운 침묵이 아니라 비슷한 숨소리들이 모여드는 따스한 시간. 황현산의 산문을 통해 우리는, 다정함이 가장 극적으로 빛나는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부탁들이라는 걸 다시금 새긴다. 그의 마지막 글은 결코 끝이 아니다. 어쩌면 시작, 또 하나의 부드러운 삶의 파문이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서평]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일상의 흔들림에 귀 기울이다”에 대한 5개의 생각

  • …이런 산문이 그리운 시대… 보고 싶어요 진정성 있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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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nda_laudantium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런 느린 문장이 그립군요. 삶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은 없지만, 사유 자체가 의미일 때가 더 많다는 점을 다시 느낍니다.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답을 원하죠. 황현산의 산문이 부드럽게 그걸 일깨우네요. 요즘 독서 인구 줄었다는데 이 글 보니 다시 책장 열어보고 싶어집니다. 문학의 쓸모가 뭐냐고 묻는 세상에선 이런 책이 더욱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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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은 황현산 책 한 권이 여행보다 더 멀리 데려다주죠… 읽으면서 나도 나에게 사소한 부탁 하나쯤은 남겨봐야겠다 싶어요. 삶이 허전할 때, 큰 위로보다 작은 문장이 오래 남는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어서 또 마음이 묘하게 움직이네요…2026년에 여전히 필요한 산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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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이 기사 진짜 감성 터진다… 산문 제대로 읽고 싶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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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데 이거 요즘 MZ한텐 먹힐까?!! 감성도 시대따라 바뀌는데~ 읽을맛 나게 나온거 맞아? 궁금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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