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 1천638명의 고통과 12개의 이름 없는 죽음

숨이 턱 막히는 7월의 열기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온열질환으로 스러진 이웃 12명의 이별을 마주하게 됐다. 올해 들이닥친 기록적인 폭염은 단순한 기상 통계를 넘어, 어디선가 구토와 현기증, 정신을 잃은 채 병원을 찾는 1천638명의 고통을 수치로 남겼다.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29일까지 온열질환자 수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14명 늘었고, 사망자는 새로 2명이 추가되어 12명으로 집계됐다. 사실 이 숫자들은 보고된 인원에 불과하다. 무더위의 그림자 아래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위기들이 이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찜통에서 살아가는 아이부터 일터의 베테랑까지, 폭염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뉴스 첫머리엔 언제나 ‘높은 기온’과 ‘열대야’가 떠오르지만, 그 밑바닥에는 고령 노동자의 벌어진 셔츠, 평상에 누운 노인들, 고시원 앞 탑쌓인 빈 생수통 등, 우리가 보면 스쳐지나기 쉬운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실제로 온열질환자 4할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이었으며, 전체 사망자의 대다수가 논밭·건설현장 등 실외작업 중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박수미(가명, 71세) 씨는 올해만 네 번이나 응급차를 불렀다. ‘우린 에어컨도 못 틀고, 미지근한 물 한 잔에 버틴다’는 박 씨의 한탄에는, 건강취약계층의 사각지대가 고스란히 배어났다. 특히, 홀로 사는 노인이나 심뇌혈관질환자, 취약계층 근로자는 냉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안전 교육 및 정보 접근도 어렵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온열질환으로 인한 입원 환자의 38%가 ‘질환 경고 징후’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해 의학적 대응이 늦는다.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는 8평 남짓한 방에 하루 종일 갇혀지내는 노인들과의 대화에서 곳곳의 ‘불’ 이야기 대신 ‘물’이 첫인사가 됐다. “물을 좀 구할 수 있냐고, 이 더위에 죽을 것 같다고…” 한 주민의 말이 올해 폭염의 풍경을 요약한다.

폭염은 도시의 무심함과 사회의 위태로움을 드러낸다. 대도시 한복판, 도로 위를 걷는 배달 라이더와 청소노동자, 건설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투박한 서러움… 각자의 포기와 생존법은 달라도, 뜨거운 태양 아래 뉘엿뉘엿 늘어가는 그림자는 평등하다 할 수 없다. 더위를 견디며 반복되는 일상과 막연한 두려움, ‘나만 참으면 되겠지’라는 매일의 아슬함이 이번 집계에도 인명 피해라는 회색 그림자를 드리웠다.

연이은 폭염 사태 속에서 지자체의 무더위 쉼터와 응급대응 체계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보건당국이 권고하는 ‘5대 생활수칙’(수분 섭취, 외출 자제, 헐렁한 옷차림, 폭염경보 확인, 폭염 작업 중단 등)은 사실상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취약계층 현장에선 쉼터 접근이 쉽지 않거나, 위치·운영시간 정보 부족, 냉방장비 미비, 쉼터까지 이동 자체의 어려움 등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2026년 들어 수도권과 전남, 경북 등 전국적으로 17개 시·도별 쉼터 운영 상황을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 일시적 홍보에 그치고 더위가 가장 심한 시간대에는 사각지대가 적지 않았다. 쉼터 외 대체 냉방 수단이나 생활지원 정책 마련도 체감 효과는 여전히 미흡하다. 더위에 죽지 않으려면 스스로 알아서 견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병상련의 풍경은 노동 현장에서 더 노골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올여름부터 옥외작업 중 ‘불가피한 작업 일시중지’를 권고했으나, 실제 집계된 작업중단은 계획 대비 60% 수준에 그쳤고, 그마저도 작은 사업장·비정규직·외국인 노동자는 제대로 된 권리 보장을 받지 못했다. 한 건설노동자의 말처럼, “모두가 퇴근 후엔 사람이고 싶다”던 바람이 현장에서는 아직 사치처럼 남아 있다. 청년 라이더, 택배기사, 달리는 고속버스 기사, 하굣길의 학생까지, 모두의 땀·한숨이 더위와 함께 얼룩진다.

기후변화 문제는 단기적 처방이나 문자 안내, 제도권 대책 너머의 관심과 연대로 해결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건강 네트워크·열지도 예보·현장 긴급구호팀 등 보다 실질적인 대응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무더위 사망자는 결코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엔 가족을, 친구를, 그리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개인의 삶이 숨어 있다. 익명의 통계 너머,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공감이 무엇보다 절실한 계절이다. 냉방시설 지원, 취약계층 우선 구조, 폭염 알람의 ‘실효성’ 강화, 고용 현장의 실질적 휴식권 및 근무환경의 개선 등 불평등한 더위의 민낯을 한 명, 한 명의 삶을 중심에 두고 가꿔나가야 할 시점이다.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이름 없는 얼굴들을 생각하자. 그리고 이 무더위가 스러뜨린 12명의 생에 우리가 조금만 더 따뜻하게, 조금만 더 집요하게 관심을 쏟을 때, 이후의 집계표엔 다른 풍경이 적힐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매일의 온도에는, 사회의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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