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훈련장 없어 ‘키즈풀’ 빌려쓰는 구조대
최근 구조 현장에서 실제로 인명구조대가 아동용 ‘키즈풀’을 임시 훈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우리 사회의 안전 인프라가 갖는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해당 구조대 팀은 전문적인 수난(수상) 구조 훈련을 준비해야 했지만, 정작 훈련장 마련은커녕 최소한의 훈련 공간도 확보받지 못해 민간 실내 수영장—그것도 아동용을—빌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였다. 이런 현장의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의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전국의 여러 구조대 및 소방서에서도 ‘공식 훈련장 부재’를 호소하며 자비를 들여 민간 시설을 빌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최근 5년간 구조대의 전문역량 문제는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현장에서는 연간 수십 차례에 이르는 구조 훈련이 의무화되어 있음에도, 훈련장은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예산 책정 역시 제각각이다. 이번 사례처럼 ‘키즈풀’에서 뛰는 구조대원의 모습은 언뜻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 안쪽엔 웃지 못할 현실이 자리한다. 훈련 전용 시설을 갖춘 시립 또는 지자체 산하 센터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예산 논리상 실제 훈련이 아닌 ‘강습용’ 소형 풀까지 전전하는 실정이다. 2020년 이후 예산 구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현장 인력들은 자기주도적 역량 개발 때조차 직접 주머니를 털거나 임시 공간을 수소문한다. 이 현상은 수도권이나 광역시와 같은 대도시보다 오히려 읍·면·군처럼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더욱 빈번히 드러난다.
이에 따라 구조대의 훈련 효율은 현저히 저하되고, 실전 대응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구조대원 A씨는 “실전 투입 때 즉각적 반응과 체력이 정말 중요한데, 훈련장 품질이 뒤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현장에서 위험 부담이 다 우리 몫”이라고 토로했다. 현장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 공무원 B씨 역시 “민원이 있으면 방치할 수 없지만 시설비나 운영비가 늘 뒷전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구조대원 가족들도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가족은 늘 위험한 일 한다지만, 정작 교실 환경보다 못한 곳에서 훈련받고 온다고 할 때 너무나 마음이 무겁다”는 부모의 호소에서 무관심한 행정의 민낯이 읽힌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구조대 내부 고충만의 이슈가 아니다. 긴급 상황에 구조대원 개인 역량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마주하는 재난의 양상이 점차 복잡·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상기후로 인한 홍수, 해일 등 수난 현장이 급증하는 가운데,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의 신속·정확한 대처 능력은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훈련장 문제로 팀워크 훈련조차 ‘시간 맞춰 예약’하며 쫓기듯 진행되고, 실제 구조 환경과는 동떨어진 작은 풀장에서 훈련을 반복한다. 구조 현장의 리얼리티를 담보할 시스템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물리적 인프라’와 ‘제도적 후속 지원’의 이중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방청·지자체·국회 모두 책임 추궁에는 익숙하지만, 실질적인 예산 할당이나 범부처 협력에는 느슨하다. 특히 소규모 시·군 지자체에서는 구조대 전용 공간 자체를 ‘사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2025년 국회에 계류 중인 구조직 훈련장 확보 관련 입법안은 이미 지연되고 있어 현장엔 당장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구조대 훈련의 표준 가이드마저 불명확한 탓에 책임 소재도 어느 한쪽으로 돌리기 어렵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현장 구조인력을 국가 차원에서 습관적 훈련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지속 확충한다. 일본은 2010년 이후 구조대 전용 실내외 수상 훈련장 사업을 전국역으로 늘렸고, 독일 역시 소방·구조대원 전용 훈련장을 지자체 단위로 할당하며 인식 개선을 유도해왔다. 우리나라 역시 소방·구조직 현장의 실태를 인정하고, 행정·예산상 실질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안전은 결코 경제논리에만 종속될 수 없는 공공 선(善)이다. 당장은 키즈풀에 의지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실제 상황을 반영한 훈련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독자들의 공감이 모인다.
현장의 안전은 곧 우리의 일상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구조대가 오늘 아동용 풀장에 머무는 이 장면이 ‘한때’의 해프닝이 아닌 우리 시대 공공지원의 민낯이라면, 이제는 제대로 된 변화를 함께 논의해야 할 때다.
— 최현서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