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10·19평화문학상, 기억의 무게로 다시 쓰는 내일
바다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리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되새겼던가. 여수와 순천, 두 도시의 이름은 역사의 한켠에 묵직하게 새겨진 채로 오랜 세월을 흘러왔다. 이제 그 상흔의 자리에 문학이 닿는다. 10·19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의 출범 소식은 단순한 시상제도가 아닌, 지역 공동체가 고통과 기억을 함께 품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성찰의 신호와도 같다.
여수·순천 10·19 사건은 오래전 봄, 남도의 작은 골목부터 산자락까지 피맺힌 이름들로 채워졌다. 불안과 의심이 휘감긴 시대, 서로 놓친 손길과 뿌려진 언어는 누군가에겐 식지 않는 두려움, 누군가에겐 잊혀지지 않는 용기로 남았다. 시간이 흘렀으나 바다의 잔물결처럼 아픔은 여전히 흐른다. 그 아픔의 잔상을 문학 속에서 담아내려는 10·19평화문학상은 이제 막 심사라는 긴 항해에 들어섰다. 위원회에는 지역의 문화인, 수상 작가, 평론가 등이 고루 포진해 있다. 각자의 시선과 마음들이 곧 모여, 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서사로 빚어질 것이다.
여수와 순천의 10·19라는 숫자는 한 해의 계절, 혹은 이 지역을 지나온 모든 세대의 정서적 지층을 의미한다. 심사위원과 운영위원, 그리고 이 상에 참여한 작가와 시민들은 과거의 슬픔 뿐 아니라 현재 일상에 내려앉은 화해와 연대, 그리고 작은 희망을 찾아 헤맨다. 10·19의 이야기를 품은 작품들은 이제 막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지난 봄 진달래가 저물 때 남긴 편지, 누군가는 좁은 마을 어귀에서 들려온 속삭임을 소재로 삼았다. 기록의 힘과 기억의 무게, 그리고 문학이 가진 고유한 응시가 이곳에 스며 식지 않는 온기로 남기를,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운영위원회는 올해부터 심사와 더불어 지역 연계 프로그램,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 평화와 인권 관련 토론의 장을 넓힐 계획을 발표했다. 단지 작품 선정에 그치지 않고, 선별된 문학이 시민의 의식과 언어를 바꿀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최근 국내외 여러 문학상 가운데서도 이렇게 지역 갈등의 기억을 창작으로 소화하고 풀어내는 시도는 깊은 의미를 남긴다. 일본의 오키나와평화문학상, 미국의 브루클린트루스상 등이 공동체의 상처와 평화에 문학적 해석을 붙여왔고, 여수·순천 역시 이제 세계와의 연대 속 자신만의 화해 서사를 쓰려는 듯하다.
역사는 늘, 그 시간이 직접 살아낸 사람들보다 길게 남는다. 10·19의 고백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제껏 서로를 어떻게 이해했고, 앞으로 무엇을 더 대화해야 하는가. 수상작의 윤곽은 아직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 문학상 출범은 지역문학의 폭을 넓히고 잊힌 아픔의 이름을 불러내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최근 전국적인 문학상 흐름이 대중성과 사회적 메시지에 치중하는 분위기 속에, 여수·순천의 시도는 ‘기억의 연대’와 ‘평화의 언어’가 무엇인지 묻는 소중한 성찰을 더한다.
문학이란 기록 이상의 꿈, 그리움, 작은 위로의 힘이다. 10·19평화문학상이 찾고자 하는 문학은, 지역의 어두운 역사에 빛을 비추는 손전등이자 상처 위에 놓여진 부드러운 손길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과거와, 그 자리에 피어오르는 미래의 목소리들이 교차하는 이 문학이, 마침내 마음의 항구에 도달하여 우리 모두가 언제든 손 뻗어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억과 평화, 문학의 삼중주가 흐르는 여수·순천에서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고, 그 어떤 상처도 잊힌 채 남겨지지 않으리라. 사라지지 않을 목소리는 단단하게 기록되고, 오늘을 견디는 이들의 일상 곁에 길게 깃든다. 창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도 누군가의 시조 한 줄, 누군가의 미소 하나가 흐를 것이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