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인생의 건강을 묻다: AI 건강리포트가 던지는 질문
지난 여름 내내 잠을 설치던 최연희(52) 씨는 최근 낯선 우편 한 통을 받았다. 질병관리청이 AI를 활용해 10만명에게 개인별 건강리포트를 제공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내용은 다소 기술적이다. 빅데이터로 만성질환과 수면패턴, 식습관, 스트레스 반응까지 종합 분석한 20쪽에 가까운 보고서. 여기에 스마트워치로 수집한 건강지수까지 더해진다. 최 씨는 그 파일을 열어보며 ‘내가 진짜 내 몸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를 처음 생각해봤다고 털어놓았다. 이 AI 건강리포트 사업은 단순한 국가 공공서비스를 넘어, 우리가 건강을 마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정부가 꾸준히 만성질환 관리의 패러다임을 새로 짜온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의 3대 사망원인(암, 심뇌혈관, 호흡기질환)은 생활 습관과 연관이 깊다. 직접 당사자를 대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건강행동을 진단·지원함으로써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 2024년 이후, 질병청은 건강관리 빅데이터를 기반한 AI 서비스 확장을 꾸준히 넓혀왔다. 정기 건강검진,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개인 질병이력, 가정환경 등 더 넓은 삶의 맥락까지 AI가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수집된 정보로 행동 변화를 제안하고, 만성관리 취약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현실도 맞이하게 된다.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20대 간호사, 식사시간을 매번 넘기는 편의점 알바생, 부모님의 당뇨병을 이어받을까 걱정하는 30대. 내가 만난 실제 이웃들의 이야기는, AI가 제공하는 지표만큼이나 복잡하고 각기 다르다. 그러나 이 AI 건강리포트가 바로 그 개인의 ‘삶’에 다가설 수 있을까? 현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데이터 기반’이라는 말이 주는 신뢰 뒤엔, 누군가의 사연과 고통, 그리고 질문이 숨어 있다. “내 건강은데이터로 다 설명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67세의 김수현 씨처럼 말이다.
동시에, AI 건강리포트는 새로운 가능성도 보여준다. 건강정보에 무심했던 청년이 습관을 바꿨고, 재활에 지친 이가 데이터에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맞춤형 권고는 일률적이 아닌 개인의 맥락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기존 ‘알려주기 식’ 건강 정책에서 벗어나, 각자 삶의 결을 반영하는 서비스다. 실제 참여자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전에는 검진 결과만 보고 넘겼는데, 이제는 내 생활 자체가 수치로 보이니까, 몸에도 마음에도 변화가 왔어요.”
그러나 아무리 고도화된 데이터라 해도,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하다. 아직 많은 이들이 내 건강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누구의 손을 거쳐가는지 불안감을 토로한다. 정보보호와 신뢰의 문제는 AI와 함께 클수록 날카롭다. 정부는 ‘익명화·암호화’를 수십 번 강조하지만, 개인정보 노출 사고가 터진 최근의 경험에선 쉬이 안도할 수 없다.
또 한편, 서비스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을 부르는 우려도 있다. 스마트기기 활용이 자연스러운 2030 세대와, 아직 전자기기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 세대의 간극. 언젠가 AI 건강리포트가 ‘나는 못 받아봤는데’란 서운함으로 남지는 않을까. 한 사람, 한 집, 한 마을의 건강이 기술 앞에 똑같이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건 기술적 진보만큼, 사람과 사회 전체가 함께 나아간다는 신뢰를 쌓는 일이다.
흥미롭게도, 이 사업의 추진 이면엔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아픈 기억이 있다. 기저질환자와 고령층이 차별받고, 정보 소외에 방치됐던 그 시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AI를 곁에 둔 새로운 건강관리 체계는, 우리 각자가 조금 더 ‘건강한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다만, 한 사람의 숨결과 사연을 ‘숫자’가 다 설명하진 못한다. 건강리포트라는 거울 앞에서, 우리는 자기 삶의 실핏줄을 다시 바라본다. 데이터는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올곧은 눈빛으로 건강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의 용기와 변화일 것이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