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 소록도의 눈물과 기억을 담은 팩트 소설

처음 책을 펼치는 순간, 오래전 소록도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의 결을 손끝으로 느낀다. 이름만으로도 아린 섬, 소록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 신간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은 마치 밤새 오열한 바다가 밀려온 자리에 던져진 한 마리 어린 사슴의 떨림, 그 상처를 조용히 지켜보는 달빛 같다.

수많은 논픽션과 다큐멘터리, 역사의 목소리가 낡은 흑백사진 속에 엉겨 있었지만, 이 소설은 ‘팩트’의 탄탄한 토대를 짙은 소설적 감수성으로 일으킨다. 저자는 기자로, 취재기자로, 그리고 무엇보다 ‘들어주는 이’로서 살아온 자신의 이력까지 투영해 소록도에 얽힌 진실과 눈물, 이름 없는 수많은 아기 사슴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데 성공한다. 등장인물 모두는 현실에서 실제 목소리를 가졌던, 혹은 발화조차 차단당한 이들이고, 한 줄 한 줄마다 이들이 남긴 콧노래, 울음, 그리고 침묵의 무게가 서려 있다.

대중문화가 가볍게 휘돌다 가는 트렌드만을 영접하기 쉬운 이 시절,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은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아픔 위에, 사랑과 연민, 역사적 부채라는 고요한 강물을 풀어놓는다. 우리가 잊거나 외면하기 쉬운 ‘한 시대의 흐린 기억’이 아닌, 오늘 우리의 눈과 심장에게도 초입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 같은 역할이다.

작품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이 마주한 고통을 낱낱이 드러낸다. 격리·차별·편견. 이 세 단어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단절과 서러움은, 주인공의 작은 손에 쥔 사슴 인형 한 토막마저도 처연하게 한다. 울음소리 대신 새벽 이슬잎마다 맺힌 절망, 그럼에도 질긴 생명을 움켜쥔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는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의 눈빛을 통해, 도시에서 자라난 우리 모두가 잊은 수많은 상처의 흔적을, 한 번만이라도 만져보기를 바란다고 은유한다.

현실은 종종 소설보다 잔인하다. 그리고 소설은 종종 현실에서조차 얻지 못하는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소록도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여러 저작과 기록들이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꾸준히 발표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다큐멘터리적 사실을 딛고, 이야기가 가진 감정의 깊이로 한 발 더 내딛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묘사는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야생 사슴이 ‘올무’에 걸리는 모습, 소박한 하루하루와 폭력이 교차하는 섬의 시간들이 촘촘하게 엮인다. 맑은 문체, 낮은 목소리로 상처의 이름과 형상을 조심스레 불러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몇 줄의 멜로디가 맴돈다. 아리랑인가, 아니면 어디선가 들었던 자장가인가. 이 작품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메마른 고증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그리움, 외로움, 미안함, 작은 동행의 기쁨, 한 아이가 남긴 이름을 지키려는 뜨거운 결심. 그 모든 감정선이 은유로, 때로는 등장인물의 짧은 독백으로 드러난다. 소설 속 시선은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매 문장마다 마음의 주름을 하나씩 더해간다.

특히 기대와 달리 소설은 도식적인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뛰어넘는다. 저자는 단순히 소록도의 희생자만을 내세우지 않고, 그곳에 머문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 돌봄의 손길조차 멀었던 가족과 지역사회의 미필적 과실, 그리고 국가, 시대의 주체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묻는다. 사랑은 죄일까, 죄 없이 태어난 이들을 폐쇄적으로 가두는 체제의 공포, 인간을 인간답게 여길 수 없었던 시대에 대한 역설적 토로가 반복된다.

이 책을 단순한 소설이라 읽는 이는, 여전히 ‘섬’이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한국 현대사가 감춘 그늘에 어떤 빛이 남아있는지를 마주하지 못하다. 누군가는 치유라 말하고, 누군가는 아물지 않을 상처로 각인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오늘도 이 땅에서 웃고 걷고 사랑하는 한, 소록도의 아기 사슴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하나의 예술적 윤리임을. 그리고 예술이야말로, 역사가 남긴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가장 깊고 오래된 언어임을.

차가운 기록이 아니다. 뜨거운 서사다. 저자가 한줄기 바람처럼 작품을 관통하는 그 감성의 온도는, 여름 소록도에 내린 빗방울, 야트막한 언덕에 웅크린 어린 짐승의 한숨에 닿아 있다.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은 이 소설 한 권을 통해 작은 사슴의 어미처럼,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그림자가 된다.

이 팩트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과연 어떤 올무와 상처, 기억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문을 닫은 섬의 어제를 바라보며, 오늘의 문턱에서 저마다의 아기 사슴을 품는 일이 예술의 몫임을 일깨운다.

정다인 ([email protected])

[신간]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 소록도의 눈물과 기억을 담은 팩트 소설”에 대한 7개의 생각

  • 소록도 얘기 또 나오네ㅎ 뭔가 안타까운데 관심받는 느낌도 있음

    댓글달기
  • 읽으면 찡할듯ㅋㅋ 근데 너무 무거우면 못 봄ㅠㅠ

    댓글달기
  • 한센병 환자분들 이야기 이렇게 알기 쉽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 좋겠어요🙏

    댓글달기
  • 팩트소설이라고 하지만 결국 상상력이 보태졌겠죠. 그래도 이런 책들이 의미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억 자체가 힘이 되니까요.

    댓글달기
  • 아기 사슴보다 내 월급이 더 올무에 걸렸는듯? 🤔 그래도 소설 한권쯤 읽고 반성해야지…

    댓글달기
  •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게 무섭습니다. 경제 발전만 외치던 시대에 사각지대처럼 남은 상처죠. 한방울의 눈물, 그 무게가 참 묵직하네요. 저도 어릴 때 교과서로 읽었던 기억이 나서 지금 다시 소설로 접한다는 게 의미 깊네요. 기록되고 읽힐수록 잊혀진 이름들이 조금은 덜 쓸쓸해지지 않을까요.

    댓글달기
  • 팩트 소설이라는 형식이 흥미롭네요.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시도가 점점 많아지는 시점에서, 이 책 역시 시대의 아픔을 문학적으로 잘 전한다고 생각. 비슷한 시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록들이 좀 더 다양하게 조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센병, 소록도의 비극뿐 아니라 ‘섬’에 담긴 의미까지 확장되는 주제가 참 인상적이에요.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가 반복하는 차별 구조를 돌아보게 하네요. 읽고 나면 오래 마음에 남을 듯합니다!

    댓글달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